Friday, May 16, 2014

깔라차끄라 딴뜨라와 샴발라 정토..

깔라차끄라는 속전이다...
경전 속전을 통틀어서...
깔라차끄라 만큼 독특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체계는 없을 것이다...
깔라차끄라는..우주시공 전체를 하나의 거대 메카니즘으로 다루고...
그 시공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것을 깔파(劫)라는 개념으로 보며...
그 경험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으로서 파악을 한다..
인간이 혹은 용이 윤회를 거듭하듯이..이 우주 또한  윤회를 하는 셈이다...
우주라는 이 대깔파 안에는... 무수한 작은 깔파(劫)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깔파의 다양성이란 생각보다 크고...다양한 깔파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오묘하다...
인간마저도...그러한 여러 톱니바퀴 중 하나로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무수한 깔파들의 상호작용을 얘기하는 것...
나는 그것을 겁나게 다양한 것을 한번에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놀라운 인식이라 부른다...
그래서... 깔라차끄라는 메카니즘의 입장에서 과거를 설득력있게 분석하고..
현재 시공이 차지하는 자리를 알아차리게 하고...
미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기다리게 해준다...
나에게 마법이란 이와같은 것이다...
.................

깔라차끄라 딴뜨라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하시던 해에..
느닷없이 샴발라의 왕에게 전한 가르침이다...
이는 부처님이 가르친 모든 다르마 중에서 가장 수승한 다르마이다...
티벳에서 무상유가부 딴뜨라 혹은..내속승에 속하는 가르침이다...
11세기까지는 인도에서도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티벳으로 건너간 뒤로는..오직 티벳불교만의 전유물인듯이 여겨지게 되었다...
이 가르침은 지나칠만큼 독특하였기 때문에...
그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일어난적도 있었다..
그러나 깔라차끄라 딴뜨라는...성취자들을 통해 그 가치를 확연히 증명하였다...
현존하는 깔라차끄라 속전은...깔라차끄라 딴뜨라 약본과 그 주석서인 정광명이다...
두 저작의 토대가 된 근본속전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


북방에 한 왕이 살고있었다...
그 왕은 다르마를 공부하기 위해..남인도 단야까따까에 머물렀다..
그의 이름은 쑤짠다라였고..티벳말로는 다와 쌍뽀라 한다...
그의 나라는 샴발라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의 앞에 석가모니부처님이 나타났고...
그는 깔라차끄라 속전을 가르침으로 받았다...
.........

9년전..단야까따까에서...
깔라차끄라 딴뜨라를 위한 큰 법회가 있었다...
그렇게해서 나는 깔라차끄라 속전과 인연을 지었다...
현재는 그곳에 아마라바띠라는 마을이 있다...
조용하고 작디작은 마을이 시끌벅적해지고...별안간 큰 도시처럼 변모하였다..
상인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전국에서 몰려와 큰 시장을 이루었고...
릭샤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꾸겨넣고서는 뻔질나게 오고갔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는..뿌연 먼지로 구름길이 되었다...
인도에 사는 거지란 거지는 다 여기에 몰려든 것 같았다...
2주동안 진행되는 야단법석의 규모는 대단하였다...
뒷편에 있는 입구에서...
관정을주시는 달라이라마님이 앉아계시는 법단까지는.. 수백미터쯤이지만..
맨앞에 따로마련한 자리를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이렇게 깔라차끄라를 위한 법회를 열면.. 보통 십만명.. 이십만명이 운집한다고 한다...
그리고..부처님께서 깔라차끄라딴뜨라를 설하신 남인도 단야까따까에서 법회를 연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마다 평범한 가정의 대문 앞은 만달라로 장엄되었다..
집안의 여자들은...흰가루를 한줌쥐고 손끝으로 만달라 수를 놓았고..
마지막에는 꽃으로 만달라의 중심과 사방 팔방을 장식하였다..
나는 매일아침..일부러 만달라로 길게 이어지는 동네길을 밟고 지나갔다..
그것은 심오하지는 않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



깔라차끄라 속전은 샴발라가 씨따강 북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샴발라가 어디에 있느냐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의견이 분분하며...
그 장소를 궁금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미궁에 빠트리고 있다...
그래서..그 실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오늘날의 중국 북서편에 있는 신장지방일거라고 추측하였다...
같은 맥락에서..타림강을 씨타강으로 보고 말이다...
그는 여러가지 증거를 들고있다...
타림분지는 제법 많은 불교도들의 고향이었다는 점..
과거에는 이곳이 물도 흐르고..나무도있는 곳이었다는 점...
상당히 많은 불교유적들이 이곳에서 발견이 되었지만..
지금은 모래속에 파뭍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
한편...샴발라국 사람들은 깔라차끄라 속전을 수행하여서..
누구라 할것없이..모두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세상에 있지만... 정토와 같고...릭빠를 자각한 자만이 이곳을 볼 수 있다 한다...
깔라차끄라 속전은..샴발라가 성산 까일라시 배후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이는 그곳을 까일라시 북편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까일라시 내부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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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짠드라(다와쌍뽀)는 샴발라국으로 돌아가서 3년간 이것을 가르치고...
아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수하였다...
이렇게해서.. 여섯명의 왕에게 전승이 이어졌으며...
여섯명의 왕은 깔라차끄라 속전을 각각 1백년씩 가르쳤다고 한다...
디와쌍뽀와 그 뒤를 이은 여섯명의 왕을...샴발라의 7 다르마라자라 한다...
이 7 다르마라자를 이은 자가 있었으니...
야사라는 이름의 왕이었고.. 만주시리의 분신이었다...
그 역시 1백년동안 깔라차끄라 속전을 가르쳤으며...
그의 재위 기간 마지막 즈음에...
미개종족의 침략으로.. 나라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스트를 무너뜨리고..베다 의례를 버린다...
그는 모든사람들을 하나의 카스트로 통일시키고..첫번째 깔끼 왕(릭덴)이 된다...
이렇게 그는...깔라차끄라 속전이 말하는 스물다섯명의 깔끼 왕 중 첫번째가 되었다..
........
샴발라의 스물다섯번째 깔끼 왕이  서기 2327년에 왕위에 오른다고 한다...
그는 샴발라국의 마지막 왕이며...
3천년간 지속된..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가 끝난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그것은...새로운 부처가 세상에 나오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는 분노존 야만따까의 분신으로 태어나고..미개종족과 큰 전쟁을 치른다고 한다...
전쟁은 그의 승리로 끝나고...세상 전체에 다르마가 뿌리내린다고 한다...
사실상...거대한 전쟁이 일어나는 곳은 상사라 전체이고..
세상속에 있는 온갖 보편적인 미개함을 뿌리 뽑는다..
그가 무찌르는 미개한 적은...탐..진..치 삼독이다...
그가 들고있는 샴발라의 깃발아래 네 군대가 모일 것이다...
그 군대는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이다..
.........


그는 문명전체를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무지를 바탕으로...이기적인 반목과 소유를 위한 투쟁을 일삼는 문명을..
릭빠의 눈으로 보고.. 다르마의 본질을 추구하는 문명으로 바꾸어줄 사람이다...
그로인해.. 다르마는 지구의 보편적인 학문이 되고..
명상은.. 지구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며...
세상은..샴발라와 같은 정토로 변모할 것이다...

Thursday, May 8, 2014

오디야나는 어디일까..?



오디야나는...
연화생께서.. 8세 동자로 화생하셨다는 곳이자..
족첸의 초조이신..가랍 도ㄹ제께서 나셨다는 곳이고..
마하무드라 전승의 초조이신 띨로빠께서 나셨다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의미로..
매우 궁금할수 밖에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이 곳은 24대성지 중 하나다...
24대성지란 헤루까와 바즈라요기니의 만달라이다...
그 중심에는 차끄라쌈바라의 궁이 있다...
24대성지 중에서...히마밧이라 성지는 우리가 아는 띠세설산...까일라시이다..
고다바리는 랍치설산이고...
짜리뜨라..데비꼬따는 짜리설산이다...

릭빠의 눈으로 보는 자들에게는...
정토에  온갖 진귀한 보석으로 장엄한 부처의 궁으로 여겨지겠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자들에게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계곡사이를 울어대고...
돌무더기사이에 낀 망자의 옷가지가 나부끼는 곳일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들에게 24대 성지 중 하나라는 말이 대단치 않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다르마를 실현하는 장소로 사용할때에는...
그 의미가 형용할수 없을 만큼 커질지도 모른다...

모든 24대성지는 비밀스럽다...
어떤 경우이든...그 비밀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법은 거의 없다...
오디야나 역시..
어떤 장소보다도 궁금하고.. 알고싶어하는 장소임이 틀림없지만...
어떤 기록에도.. 이 장소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는 것 같다...

오디야나가 지금의 스왓이라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스왓은.. 산스크리트어.. 수바스뚜의 두리뭉실한 표현이다.....
`수`는 좋다는 뜻이고.. `바스뚜`는 거처.. 장소의 의미이다...
그러니까...스왓이란 그저 풍수적인 명당을 일컫는 말일 뿐이다..
인도의 풍수인 `바스뚜`는 지금.. 서양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다...
적어도 힌두의학인...`아유라베다`보다는 그렇다...
`바스뚜`에 관련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중국..한국의 풍수란... 인도 `바스뚜`의 문화적인 변형이다..


근데...
그곳에 가면... 스왓이라는 데가 엄청 많다..
여기도 명당.. 저기도 명당인 셈이다...
오디야나는 한 장소가 아닌 모양이다..
지역을 이잡듯이 뒤진 뒤에...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단다...
오디야나라는 것이...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듯이 국소적인 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빠뛸 린포체는 그의 저서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다나꼬샤라는 것이...제법 넓은 지역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연화생께서 화생하셨다는 다나꼬샤 호수가 작은 호수인줄 알았잖은가...?
그곳에 가면... 호수가 엄청많다...
그곳은 다끼니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다나꼬샤가 얼마나 넓냐면..남한의 절반만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친것만큼이나 될 터이다..
다나꼬샤란...치뜨랄..길깃..스왓이라는 세 장소 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디야나란..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티벳서부 샹슝지방..
인도 카시미르 지역에 걸쳐있는 방대한 지역인 셈이다..


우리는 들었다...
연화생..빠드마삼바바는..
오디야나라는 나라의 다나꼬샤 호수 한가운데에 핀 연꽃 몽우리 속에  화생하셨다고..
그런데...
다나꼬샤가...단순히 호수가 아니라...
온갖 자량과 비범함이 가득한 지역을 의미한다면..
다나꼬샤의 가운데에 있는 연꽃이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어떤 지역..성지의 중심일 수 있다...
조사해본바에 의하면...대성지는 대개.. 풍수적 명당이다..
이것은 내가 나의 풍수적 안목을 걸고 보장한다...
.............
해석을 해보자면..
다나꼬샤는 연꽃이 물에 떠있다는 연화부수(蓮花浮水)의 길지인셈이다...
그 성지의 특성을 연꽃에 비유했으니...
그 주변의 지역은 당연히 연꽃이 떠있는 물이 되어야하는 법이다..
그렇지않으면... 다나꼬샤라는 넓은 지역을 물로 볼수 있는 방법이 없다...

Saturday, May 3, 2014

진아..브라흐만..창조.


무아...진아..

무아는 공성에 위배되지않고..
공성은 여래장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을 위해 세가지 법륜으로...세가지 견해를 말씀하셨다...
초전법륜의 무아,,이전법륜의 공성..삼전법륜의 여래장...
진실을 보는 눈의 깊이는 다를지라도...분명 같은 것을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힌두의 진아는 무아도 아니고 공성도 아니고..여래장도 아니다..
다른 개념이다...
무아와 공성과 여래장의 개념에  접근하려했던 개념이 있다...
그것은 브라흐만이다...
그러나 진아...아트만이 발목을 붙잡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아는 무아이거나 여래장일수 없다..
알라야(아뢰야식)의 의미를 가지고...뒤로  물러나야 한다...
진아를 불성이나 여래장의 의미로 보면... 커다란 패착이다...
....

우파니샤드를 직관하고.. 불교를 수용하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9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상카라는..
인도불교가 티벳으로 거너가고...
빠드마삼바바께서 티벳으로 건너가던 당시에 살았다...
빠드마삼바바가 티벳에서 내속승을 가르칠 때...
그는 아드바이타베단타를 가지고...세상으로 나아갔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 자리매김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다른 힌두철학들이.. 힌두를 가장한 불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같은 어미의 배에서 나왔는데..근본이 다른것처럼 여겨졌다..
다른 종교들은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힌두의 정체성은 위협받고...
아닌게 아니라..
외부세력들을 향한.. 힌두의 자존심을 건 투쟁에서..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우파니샤드를 직관하고..불교의 중관과 유가행의 가르침을 수용했다...
불교는 베다에서 비롯되지않았으니...
6파철학과는 뿌리에서 다르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 불교적인 향기를 발산하자..
힌두철학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난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불교는 그만큼..뿌리가 다른 것이었다...
베다의 자식들은...아드바이타베단타를 영토밖으로 밀어내려고 하였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힌두철학을 가장한 불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드바이타는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아트만과 브라흐만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브라흐만은...니르구나 브라흐만이다...
브라흐만의 본질은 언설로 지적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실존Sat...의식Cit..지복Ananda이다...
다른말로 하면...원시청정의 공성..명징한 자각..편만한 자비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세가지 토대가 있다...
브라흐마수뜨라.. 우파니샤드..바가바드기타가 그것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를 따르는자들은 이것을 공부한다...
수용하는 자세로 받아들인다면...하나 더 있다...
대승불교의 중관과 유가행이다....
이 네가지가 아드바이타베단타를 만들었다...

그는 6파철학을 논파하고...베단타의 오류를 개선하였다...
아드바이타의 개념은 그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베단타 안에 있었다...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베단타 안에 이미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모순을 타개해나갔다...
아드바이타베단타의 토대를 마련해준자는 상카라의 스승의 스승이었다...
상카라의 스승은 그의 비범함을 보고 아드바이타베단타를 맡긴다..
``내가 이것을 줄터이니...너의 입심을 발휘해라...``
그는 마치..잠양켄쩨왕뽀의 생각을 언어로 정리한 잠괸꽁뛸로되타예 같았다...
상카라는 문장을 해득하고...정리하고..주석을 다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용어가 기존의 힌두용어이니...베꼈다는 증거는 보이지않는다..
심증은 있는데..물증이 없다고 할수 있다...
적어도 아드바이타베단타는 불교는 아니다..
불교를 부분수용한 힌두철학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

둘은 분명히 다르다...

힌두의 본질과 불교의 본질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힌두인들이 말하는 본질과 불교인들이 말하는 본질사이에..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지..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말할수 있는자는 적다...

불교의 모든 전승은...부처님의 세가지 교설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서로 근본이 대립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바탕과 밑그림은 하나로 하고..저마다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하는 것이다...
붓다다르마는 경승과 속승이 대립되지 않는다..
속승은 부처님의 삼전법륜을 바탕으로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닝마의 9부승은 아홉가지로 갈라지지만... 서로 근본적으로 대립되지는 않는다..

중관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중관은 깊은 의도에 의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자립논증..귀류논증...
둘은 관점의 차이가 있으며..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
수행의 차제와도 관련되어있다..
어느 하나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차이가 있고...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티벳은 귀류논증을 수용하였다...
그리고..다른 필요성과 의도가 여기에 개입되었다...
귀류논증이..자공설과 타공설로 나뉘어진 것이다..
귀류논증 타공설은...붓다다르마의 최상의 견해에 맞닿아 있다...
타공설은...유가행의 미륵오론이나.. 족첸의 견해와 비교할 수 있다...
중관의 포괄적인 의미는 부처님의 이전법륜이다..
공성의 이치를 논한다...
중관이 말하는 공성의 이치는 수준에따라 미세하게 갈라진다...
중관과 유가행과 족첸사이에도 작은 차이가 발견된다...
여러분은 이 차이를 분간하고 수승함에 따라 순위를 정할수 있다고 보는가..?
이것을 분간할수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이처럼 아주 미세한 차이를 논하는 이유는  무얼까..?
수행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를 치열하게 논하는 집단들이....
아드바이타베단타와 중관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는다...
어떤 분야의 장인들은 미세한 차이를 본다..
미세한 차이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안다...
개당귀와 참당귀는 정말 비슷하다..
둘을 구분하는 것은.. 약초를 캐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개당귀는 조금만 잘못먹어도 거품물고 쓰러지는 독초이지만...
참당귀는 매우 유익한 약초이기 때문이다...
나는 약초의 달인을 만난적이 있다..
그는 1백가지도 넘는 참당귀를 구분하였다...
어떤 것은...설탕만큼이나 단 당귀가 있었다...
그 당귀는 오래된 산삼보다 훨씬 희귀하다고 한다...
약초꾼은 개당귀와 참당귀를 한 눈에 알아본다..
건성으로 보아도 안다..
...............

갈등이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

다르마의 입장에서...6파철학의 갈등이란 불교처럼 미세한 부분이 아니다...
근본 프레임자체가 어긋나있는듯이 보인다...
같은 베단타안에서도...분파간에 차별이 심하다...
정체성을 논하는데...자체대립이라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베다의 정체성이 확립되려면..
그로부터 나온 모든 철학이 개념적으로 같은 토대를 이루어야 한다...
모든 힌두철학이 자체 모순을 극복하고...근본적으로 같은 토대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불교와 정체성을 논해야 할것이다..
사실 이 문제가 존재하는 한...
아드바이타베단타가 불교철학과 비교가능하다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눌 자격이 생기질 않는다...

부분만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체성이란.. 부분만가지고 논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에 지적했던 것처럼...
힌두철학은 대부분 극심한 모순투성이인데다가...
화해할수 없을만큼 서로 크게 다르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썩은 사과의  보기좋은 부분과 같다..
보기 좋은 부분을 내보이면서...정체성을 논할수는 없다...
썩은 것이 정체성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되지않는가..?
아드바이타베단타의 가치는...힌두철학에서 가장 높은 가르침이라는 것에 있지 않다...
힌두철학의 극심한 갈등을 어느정도 해소하고...
전체를 결속할 수 있는 끈을 마련했다는 것에 있다..
그 시도는 어느정도까지는 성공한듯이 보인다...
........

불이일원론...

가우다파다는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의 토대를 세웠다.....
그는 상카라의 스승의 스승이었고..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힌두철학와 불교철학의 두 세계를 연결하였다..
그렇지만 차이도 있었다...
아트만의 실존을 받아들이는 대신 연기법(緣起法)은 포기하였다...
불교는 연기법에 따르지만...가우다빠다는 실재를 직관하는 방법을 썼다...
그말은... 지혜를 강조하고.. 방편은 결여되어있다는 뜻이다,..
6조 혜능 이후의 선(禪)이 그러한것처럼 말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의 수행은 그처럼 지혜에 편중되어 있다...
방법의 핵심이...중관...마하무드라.. 족첸의 심식부와 닮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혹은 족첸의 떽최(공성)를 수행하지만.. 퇴갤은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베단타의 문제는 뭘까..?
견성은 있지만..성불은 없다는 뜻이다...
법신은 체득하지만... 두가지 색신을 얻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중국의 선(禪)처럼 성불의 가능성이 사라진 셈이다...

지혜와 방편의 포괄적 운용...
불교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그 위대함은 주로 속승에 나타난다...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법신을 체득한자라도... 미숙한 홍광신은 이룰 수 있다...
수승한 홍광신이나 광명신은 이루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

공성을 논하지만 공성이 아니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공성을 논한다...
그러나 아드바이타베단타와 중관의 차이는 매우 크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건성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공성의 이치를 논한다 하지만...
근본에서 진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공성의 견해는 무아의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그들이 말하는 아드바이타(不二)라는 것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불이(不二)이다..
공성의 입장에서..하나 혹은 전부는 공성이 아니다...
궁극적인 하나인 아트만도..아트만의 무한집합인 브라흐만도 공성의 이치에서 벗어난다..
둘이 결합하여 하나가된다는 것도 공성의 이치에서 벗어난다..
아드바이타라 말하지만.. 아드바이타가 아니다...
기본이 마련되어있지않으므로.. 논할수 있는 바탕이 없다..
그러므로...아드바이타베단타가
중관의 타공설이나 유가행의 법법성분별론... 족첸의 견해와 논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베다는 아트만을 버려야 한다..

베단타에서..아트만과 브라흐만은 두 극처럼 연관성을 가지고 대비되고있다...
이러한 관계의 대비성이...브라흐만의 의미에 악영향을 미친다...
베단타에 의하면...아트만은 원자크기만한 극소분자이다..
아트만은.. 무명을 버리면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며..
영원히 브라흐만을 구성하는 한부분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트만이라는 하나의 입자가 무수하게 집합한것이 브라흐만이라는 개념이다...
공성이란...하나인것도 아니고... 모든것을 합친 전체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트만도 공성에 부합하지않고... 브라흐만도 공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이거나 전부인것은 마야로서만 연기(緣起)적으로 나타날뿐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의 진아나 브라흐만은... 마야로서만 존재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중관과 논쟁이 불가하다...
중관과 논쟁할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 있다...
..................

혹은..아트만은 알라야여야 한다...

아트만(진아)의 의미가 알라야(아뢰야식)라면..
힌두철학이 안고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아트만이... 알라야의 개념이라면...
연기적으로만 나타나고...
공성으로서의 브라흐만의 본질에 그림자를 잠시 드리울뿐이기에...
본래 완전한 브라흐만(공성)의 개념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자아로서의 알라야는 윤회의 주체이고 연기(緣起)의 뿌리이다...
그것은 경험을 저장하고..
개별적인 인격을 형성하며...
가장 보편적인 언어.. 영혼의 의미와 유사하다...
알라야...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연기(緣起)적으로만 나타난다...
브라흐만의 입장에서  보면... 알라야는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어떤 것도 개체나 전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성의 견해에 굳건히 서고..
아트만을 알라야로보면 된다고하였으나...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
6파철학..혹은 아드바이타베단타는 불교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힌두의 정체성이 일시에 무너지는 셈이다...

상카라가 완전한 다르마를 세우지 못한것은..
버려야 할 개념...아트만을 끝내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은 것이리라...
힌두의 영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트만을 지키고... 다르마는 버렸다..
힌두를 지극히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종주국..인도가 바로 서는 날이 오려면...
삼세 부처의 완전한 다르마를 세우려면...
과거의 유물인 베다를 버려야 할 것이다...
과격하지만 완전한 처방이다...
..................

세상은 브라흐만이 창조하였을까..?

자신이 자신안에 자신을 창조했다는 의미라면...창조가 맞다...
브라흐만은 자기안에.. 자기환영적인 거대한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러나 피조물은 없다...
일종의 자기연출이기 때문이다..
브라흐만 안에 브라흐만의 그림자가 던져졌다..
그것을 마야라 한다...
마야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야다...
마야를 창조했으니.. 실제로는 창조한 것이 없다..
마야라는 것은 실존이 아니니...
이 창조는 창조된 대상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자기내포적이다...
자기내포적이라는 것은 피조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창조물은 이원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둘이 아니다...
하지만....
브라흐만이.. 브라흐만 자신이 아닌 다른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의미였다면...
이 세상은 창조된게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브라흐만은...자기안에 홀로그램과 같은 자기를 창조하고...
나타난 브라흐만은 연기적인 착시로서 존재한다...
베단타가 불이일원론이 맞다면.. 이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아트만을 연기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불이일원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트만을 윤회의 주체인 알라야(아뢰야식)으로 보지않는다면...
근본적인 모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것이 베다에 기반한 모든 철학이 가진 원초적 문제이다...
모든 힌두철학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이 두개의 본질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다르마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


진아와 브라흐만의 합일

불교에서 자아와 공성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되돌아갈 것도.. 결합할 것도 없다...
어떤 부분적인 자아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공설의 입장에서 보면... 정광명을 이야기하지만...그것은 자아가 아니다...
깨달은 부처라하더라도.. 그 자신을 의미하는 자아는 없다...
힌두철학에서 진아와 브라흐만은 동일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결국.. 진아는 없다..
그러므로 합일도 없다...
무명이 벗겨지면... 합일한다고 생각하는 진아는 찾아봐도 없다...
인지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자도 없고.. 인지의 대상도 없다..
그것이 진정한 브라흐만이다..
본래부터
브라흐만의 본질은...
무시이래  모든 중생의 본질이고..
그것을 자각하는 성문..연각.. 보살.. 금강살타..비드야다라의 본질이고..
궁극적인 경지...부처의 본질이다...
무아는..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뜻이다...
공성은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뜻이다...
원시청정의 하늘에는 하나로서의 아트만이 없다...
무한소가 없으므로...무한소의 거대집합으로서의 브라흐만도 없다..
여래장은..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뜻이다...
명징한 자각은.. 원시청정의 하늘을 꽉채우지만...
무한소의 아트만도 아니고 무한대 집합으로서의 브라흐만도 아니다...
여래장에는 진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진아(아트만)가 없으니 합일하는 자도 없고... 해탈(지반묵티)도 없다..
연기로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마야일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불이일원론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 끝내 불이일원론이 되지못하는 것은...
아트만을 놓지 않은 채.. 브라흐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라다크리슈난..

라다크리슈난은..
아드바이타베단타를 가지고..불교의 초전법륜과 비교를 하였다...
정당한것은 아니지않은가..?
어느산이 더 높은가를 따지는데..
이 산 산꼭대기와 저 산 구릉을 비교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남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불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라다크리슈난은 자기무지를 심각히 드러냈으며...
그로인해...자신의 가치를 손상시킨 것이다...
학자의 무지는 대중들에게도 끼치는 영향이 크다...
그것은 어찌 책임질 것인가..?
...............

아드바이타베단타..서양의 지지를 얻다..

라마나마하리시...라마크리슈나..비베카난다는..
아드바이타베단타의 후예들이다...
그들의 영향으로...서구 정신세계에 아드바이타베단타의 불이일원론이 알려졌다..
서구적인 마인드를 가진사람들에게는...
힌두의 영향을 받은 아드바이타베단타가 중관이나..족첸보다는 입맛에 맞았을 것이다...
서양인들에게..친근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고싶은 생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입맛에 맞으면..우호적인 입장이 되고...다른쪽에 대해서는 배타적일수가 있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서양의 정신적인 흐름을 일으킨다...
아드바이타는...새로운 신비주의의 토양이 되고...뉴에이지 운동의 원동력이 된다...
물론... 새로운 신비주의의 옷을 벗겨보면...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그리고...가치에 목마른 젊은 한국인의 정신은..
화석화된 한국불교에 등을 돌리고...
서양인의 옷을 입은 아드바이타베단타나 티벳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아드바이타베단타에 좀 더 우호적인 평가를 보게 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학자들의 이러한 편향적인 평가들을 아무 검증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

힌두철학의 산 정상에는 베단타가 있다...
베단타는 베다가 쓴 승리의 월계관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그에게 불교가 말한다...
``알다시피...내가 니 에미다..
너는 네 스스로 존재할수없어...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나를 모방하고...
나를 닮은 것으로서 내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더냐..!``

티벳의 토속종교인 뵌교에게 불교는 말한다...
``알다시피...내가 니 에미다..
너는 네 스스로 존재할수없어...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나를 모방하고...
나를 닮은 것으로서 내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더냐..!``

신지학에서 시작하여 연이어 나타난 새로운 신비주의에게 불교는 말한다...
``알다시피...내가 니 에미다..
너는 네 스스로 존재할수 없어...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나를 모방하고...
나를 닮은 것으로서 내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더냐..!``

라다크리슈난의 생각...

라다크리슈난은...
비판하는 상대방을 너무 모르거나..
자기 정체성을 위해..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가...그사람의 글을 보고 불교를 판단한다면...
그는 잠시.. 건전하지 못한 미혹에 빠진 것이다..


브라흐만이나 공성에 관한 주제를 다룰때는...
진실을 분별하고..선택하는 입장에서..
적어도 이성이라는 오만에 빠져있는 학자들을 개입시키지 않는것이 좋다...
상카라는 이러하였다...
혹은 나가르쥬나는 이러하였다..
롱첸빠는 이러하였다라는 방식으로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차이는 뭐냐..
전자는 마음의 분별력에 의존하는 자들이고...
후자는 마음의 분별을 떠나.. 릭빠를 직관하는 자들이다...
직관한다는 것은...브라흐만이라는 주제를 인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접근하는 자는..적어도  다루고자 하는 이 본질에 대한 내적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이 학자들처럼 오만에 빠진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작은 지식이 위험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성의 힘을 너무 믿는다..
무엇이든 비판하려고 하는 학자들의 권력이 비대해졌다..
그것은 시대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라다크리슈난은...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이며...세계는 비실재적이다....라는 상카라의 논제를 반박하였다..
그는 아드바이타베단타의 불이론을 따르지만.. 환영설을 거부한다...

라다크리슈난은..
소승으로서의 불교를 속박으로 보고있다...
불교를 초전법륜의 눈으로 본다...
초전법륜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다르마이다...
초전법륜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린다고 말하고...
더러움을 씻는다 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한다고 말한다...
깨달은 성인이 될수는 있으나 부처가 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전법륜이 불교의 전부던가..?
이전법륜과 삼전법륜을 말하지 않고...어찌 불교를 얘기할 수 있을까..?

라다크리슈난은..
대승의 예불을 타락으로 보고있다...
부처님은 법등명 자등명이라했다는데...
어느새... 부처가 신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한다...

라다크리슈난은..
불교 속승을 힌두 딴뜨라의 모방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불교쇠퇴의 결정적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의 속전은 비쉬누교나 쉬바교보다 1천년이나 앞서고 있다...
먼저 생긴것이..나중에 생기것을 모방할수는 없지않은가...?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하시기 전에..다양한 속전(Tantra)을 설하셨고...
마하요가 아누요가의 불교 속전이 나타난것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직후이다..
아마도 라다크리슈난은 불교의 속전이..인도불교가 쇠퇴하기 직전에 생긴 것으로 본것같다...
............

라다크리슈난에 의하면..
초기불교가 유일하게 힌두교와 다른 것은 제사를 거부한 것이라고 한다...
대승과 속전에서 다양한 의례와 방편들이 나타나면서...힌두교와 다를게 없게되었다고도 한다...

다르마는 나무와 같다...
부처님이 던진 다르마의 씨앗은..
오랜세월동안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다르마 나무는 한순간에 자라지 않는다...
순서가 뒤바뀌지도 않는다...
다르마나무는 역사속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초전법륜의 바탕으로 성문승..연각승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몇백년뒤에는,,,이전법륜의 바탕으로 대승의 여러전승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몇백년뒤에는 삼전법륜의 바탕으로 속승의 다양한 전승이 꽃피우고 열매 맺었다...
부처님의 세가지 수준의 다르마는 이렇게 시간 간격을 두고 역사에 드러났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처음에 사람들은..눈에 보이는 세계를 본다...
다르마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적용된다..
성문 연각이란 그와같은 메카니즘이 적용된 다르마이다...
그러나 자량이 쌓이고.. 마음이 열리고...릭빠로서 세상을 보기시작하면서...
정토를 장엄한 세계를 보고..그 안에 있는 부처님과 보살과 본존과 다까 다끼니들을 본다...
다양한 신격들이 나타나지만...이것은 원시의 청정한 본질에 대한 자각일 뿐이다..
그것은  다양한 의식과 예식으로 표현이 된다...
그러한 내적 상징들이 고도로 발달하니... 그것이 속승(Tantra)의 다양한 방편들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르마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며...
다르마가 변질되었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그의 비판에서 드러났듯이..
라다크리슈난은 다르마의 자연스러운 전개를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

라다크리슈난은 불교가 초심을 버리고...점차 낮은계층의 대중들을 외면하였다고 말한다...
불교에 외적 카스트는 없지만...내적 카스트는 존재한다...
성문 연각의 수행은 누구나 입문이 가능하다..
큰 자량이 필요없으므로...많은 대중들이 수용된다...
하지만 대승이나 속승의 수승한 다르마는  수승한 인간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태생적 결함이 없고...
자량이 쌓이고.. 좋은 가문에 태어난자가 수행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

Tuesday, April 15, 2014

경승의 믿음과 속승의 지견...


수미산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산 자체에 관한 것이며... 예상 가능한 위험..
그것을 즐길수 있는 법...정상에 오르는 의미...정상에 오르는 방법...등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상에 오르는 의미...정상에 오르는 방법..이라고 가정을 해볼께요...

그래서 여러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다들 내놓으라는 전문가들이니...
산 자체에 관한 부분이라든가...정상에 오르는 의미는...
다들 거의 비슷하게 얘기했는데...
정상에 오르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 달랐다고 해볼께요...

수미산 정상에는...
인도인들이 말하는 차끄라삼바라...
티벳인들이 말하는 코로돔빠가 상주하고 계십니다...
정토만달라의 중심에 있는 우주수(수미산) 꼭대기에는..
그 정토 만달라의 주인이신 코로돔빠가 계시는 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전문가에게 말했어요...
저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매우 수승한 덕이있다 들었습니다...
어떻게하면 저 꼭대기에 이르겠습니까..?

참으로 기특하게 생각하면서...한사람은...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나의 서원의 짚신을 줄터이니...
네 믿음의 발을 여기에 끼우고...저 가파른 암벽을 붙잡고 걸어서 올라가라...
이 길은 너의 의지에 달려있고.. 길이 매우 멀고 험하니 이를 악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라가면서...방향과 목적을 잃고 곁길로 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꼭대기..꼭대기..꼭대기.. 꼭대기..꼭대기를 일념으로 외우라..``

다른 한 사람은..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북편 비밀의 계곡에 가면...금시조가 살고 있다...
그 금시조를 찾아...네 지견의 힘으로 저 가피의 등에 올라타라....
그러면..순식간에 정상에 이르게 될것이다...
어디로 가자고 하지않아도
금시조는 반드시.. 오류없이 재빠르게 정상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둥지가 정상에 있고...
한번도 그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에서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


서원의 짚신을 신을 것이냐...
가피의 금시조에 올라탈 것이냐는 자신의 결정입니다...
그러나... 같은 것을 의미하는 다른 두가지를 각자 준비해야 하겠죠...
하나는 믿음이고... 하나는 지견입니다..
같은 것을 의미하는 다른 두가지에 대해 설명해드립니다...

둘은 뿌리에서 하나입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소멸하고.. 릭빠가 출현했을 때..
마음의 틈 사이로 보여주는 릭빠의 여운입니다...
릭빠의 출현빈도는 점점 강해질겁니다...
그에 비해.. 내속승에서 말하는 지견이란 릭빠의 완전한 자각입니다..
정도의 차이일뿐이지...
둘 다..사물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자각하는 것을..불성과 관련짓기도 합니다..
경승의 믿음과 속승의 지견은..이 불성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갈립니다..
사물의 자성을 보더라도 눈이 흐리면..
보는 자성과 부처사이에 아주아주 거리가 멀다고 여깁니다...
그래서...서원의 짚신을 신고...저 멀리있는 아미타를 향해 걸어갑니다...
릭빠의 완전한 자각에서 보면...아미타는 멀리있지 않습니다...
사물의 자성은 본래청정하여..때가 묻지않았으며...
사물의 자성이 곧 아미타이니...가야할 길도 없고.. 짚신도 필요없습니다..

이처럼... 자성을 보는 눈의 깊이에 따라...
경승과 속승의 견해가 갈리고...
그 견해에 따라...취하는 방편도 달라집니다..
정토삼부경의 방편은 경승에 있지만..
정토삼부경의 수승한 방편은... 속승에 있다 할수 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석가모니로서 나타나기도 하고...구루린포체로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짚신을 주었고...어떤 자에게는 금시조를 주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두 사람은 두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미타부처님의 양면성입니다...

Sunday, April 13, 2014

The Cello Song --The Piano Guys


나는 꿈에서 첼로를 연주하곤하였다..
물론 나는 이번 생에 한번도 첼로를 만져본 적이 없다...
첼로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고..소리가 어떤지도 몰랐다..
생긴것을 따져보고는 그것이 첼로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이렇게 한번씩 듣는다...

첼로를 연주하는 꿈속의 나는.. 현을 만지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소위 한가닥하는 쏨씨였다..
어렵쇼~~

어쩌면 나는 어느 전생에.. 
첼로라는 악기를 다루는 쟁이였는지도 모른다..

가야할 세상은 따로 없습니다..


1,티벳에는 밀교.. 정토왕생의 방편이 있다...
반드시 정토왕생하려면...
다른 속승의 방편과 포와 중 어느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

--->>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라면...누구보다도 법등님이 잘 아실것입니다..
정토수행과 관련하여..Sutra Tantra 양 갈래에서 고심하신줄로 압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방편이 있으니.. 둘 다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법등님은...
Tantra에서 길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시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법등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겠지만..
생각하시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Sutra.. Tantra 둘 다..정토에 날 수 있는 방편을 제시하고 있고....
경승(經乘)보다는...무상유가속 혹은 내속승의 방편이 수승하다는 것을 아시겠지만...
과연 나는 내속승을 수행할만한 견해를 갖추고있는가를 먼저 점검해야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경승의 방편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어울리는 견해를 갖추지 않는다면.. 선택이 욕심일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는...경승이냐.. 혹은 속승이냐를 떠나서...
내가 선택하게 될 전승이... 살아있는 전승의 맥을 가지고있느냐 ...
혹은 전승의 맥이 강력하냐.. 약하냐를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세번째는 선택과 집중입니다...
어느곳이 되었든..갈등하지 마시고 발을 들여놓으십시오...
안에서 우러나오는 바른 지견에 안착하십시오..
그 지견이.. 확신을 가지고 수행을 견인할 것입니다...
망상분별하는 마음이 강하다면.. 수행은 어렵습니다..

전승의 법맥이 살아있는 곳을 선택하고..
공성의 지견을 가지고 있고..
진심으로..안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을가지고 전승의 법을 따른다면..
어느 전승.. 어느 가르침을 가지고 있던 반드시 정토에 이릅니다...
방편이 무엇인가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위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모든 경승,속승의 방편이 다 통하며...
내속승의 방편을 선택한다면...가장 빠르고 확실할겁니다..
방편이 수승한 이유는 견해가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2,방해와 예기치않음..착란..이런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고 정토에 가겠는가..?
혹은 어떻게 정토를 인식하겠는가..?
반드시 그 곳으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으면 한다...

--->>
연기 공성의 지견을 갖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의 분별로보느냐.. 릭빠의 자각으로보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의 연기적 실체를  이해하면...세상이 정토입니다...
연기적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예토입니다..
릭빠의 자각이 있다면...
어떤것을 하든 안하든...모든 길이 정토로 통해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본질적으로 정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념을 다스리십시오..
사념 사이로 릭빠가 나타나도록 허용하십시오..
사념이 가라않고.. 릭빠가 지배하면..
어떤 승의 마차를 타든.. 어느 가르침을 따르든..
정토로 완전히 열려있음을 알 것입니다..
여기..여기..여기..여기..여기..모두가 정토입니다..
릭빠가 나타나지 않으면..
삶의 모든 순간이 고통이고.. 수행도 고통의 생산자입니다..
그러므로..마음의 분별이 정토를 가리는 미혹의 장막이고..
그와같은 미혹된 착각을 예토라 할 뿐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견해에 안주하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그냥 가라앉지 않고..견해는 거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별해탈계 등을 잘 지켜야 합니다..
계는 6바라밀에서 보시 지계 인욕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두고 복덕자량을 쌓는다라고 할겁니다...
별해탈계는 놓아버림의 메카니즘입니다..
꼭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는 집착이 떨어져나가니..
갈등이 사라지고..격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갈등이 사라지고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니..
사념이 줄어들고..릭빠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릭빠가나타나니..사물을 있는그대로 잘 보게됩니다..
마음은 넓게 개방이 되고..적절히 행동하는 법을 압니다..
이와같이 지혜자량이 쌓입니다..

이와같다면... 가야할 세상은 따로 없습니다..
예토로 보던 모든 것은 정토로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살아서 이런 것들이 이해되지않는다면.. 죽어서도 정토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좋은 정토 수행법을 고민하는것보다는...
자량을 쌓고.. 견해를 확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조건이 성숙되어있다면.. 어느 수행법을 선택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자량을 쌓으시고.. 
가능하면 셰드라에 가서 공부해보십시오..


3,포와의 수행만으로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포와수행만으로 정말 정토로 향할수 있을까..?
바르도의 혼돈에서 벗어나 정토를 인식할수있을까..?
한편..이또한 무상유가부속에 속하니..완전한 깨달음에 이를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로6법 중 하나만 닦아도 성불할수 있다고 하는데...과연 포와는 어떨까?

--->>
포와수행으로 정토에 못날수도 있습니다..
포와수행으로 정토에 날수도 있습니다..
포와수행으로 더 높은 깨달음에 이를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견해와 방편의 적용 수준에 달려있습니다..

무상유가부속(無上瑜伽部續)에 속한다 해서..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것은 아닙니다..
생기차제..원만차제..대원만차제 라고하는 세가지 메카니즘을 수용할 때..
완전한 깨달음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6법중 어느 하나를 닦는다하더라도...
마하무드라(大手印)수행과 결합하지 않는다면...안될 것입니다..
뚬모는 지배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것들은 부수적인 가치들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방편으로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은 다소 무리입니다...
마하무드라를 수행하고..뚬모를 중심으로 하고 다른 방편들을 보조하면 될 것입니다..
마하무드라를 성취하였고...뚬모를 수행하고 있다면..
거의 성불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만큼 뚬모는 지배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포와는 나로6법 중..어느 한부분과 겹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그보다는 하위 개념의 수행입니다..


4,꾼상라메셰룽은..예비수행에서 포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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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닝마전승의 독특한 선택입니다...
닝마전승의 6불공가행 안에는 이 부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포와 전체가 아닙니다.. 포와의 가치를 살렸을 뿐입니다..

불공가행(예비수행)에 집중하십시오...
가행이 어려운 것은...
자량이 쌓이지 않아서...
계가 청정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선정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선정력이 없다면..
오히려 공가행을 하면서.. 
삶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나가고.. 선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마저도 잘되지 않는다면...
업이 두터우므로..
삶을 통해 좀 더 단련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