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26, 2015

길상보병(吉祥寶甁)으로 새로운 천년을 열다..


2015년인 올해는..
길상보병(吉祥寶甁)을 땅 속에 묻은지..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06년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눈이 많은 겨울만 빼고...1년이 꼬박 걸린 일이었습니다..
겨울 눈이 채 녹지않은 2월 말이나 3월 초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마무리지어진 것은 11월이 다 지나간 뒤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사는 집에.. 12개의 보병이 도착했습니다..
방안에 그득히 쌓인 이상하고 촌스러운 물건..
뭔가를 잔뜩 집어넣고 봉인(封印)한 노란 단지...
크기는 한되 크기의 항아리같은 것이었어요..

멀리서 보내 온 편지봉투라도 되는 것 마냥..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 안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한 생각도 들었지만..결국 뜯어보지는 못했습니다..



..
마음이 아름다우신 한분을 불러.. 지도를 펼쳐놓고...
이 놈들을 어디다 심을지 생각해보았죠...
함께 한 그분은.. 심지가 곧으시고, 풍수지리의 바른 맥을 이으려는 분입니다..
명산이었으면 좋겠고..
가까울수록 영향을 크게 주는 것이니..큰 도시에서도 가깝기를 바랬습니다...
아래 지도에 표기한 곳이...
보병을 심기로 결정한 곳이고...그렇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보니.. 참 엉성한 표기입니다..


1번은 북한산입니다...
한북정맥의 끝자락에 가까우며...겁나 많은 서울사람들이 벌집처럼 붙어있는 곳..

2번은 가야산입니다...
금북정맥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입니다...

3번은 계룡산입니다...
금남정맥의 끝으로 나아가는 곳이며..대전과 공주가 가까이에 이웃하고 있습니다..

4번은 모악산입니다..
과거불시대부터 성산이었던 이곳에 전주가 있습니다...

5번은 무등산입니다..
호남정맥에 있으며..광주를 품고 있습니다..

6번은 한라산입니다...
한라의 치마자락에 제주와 서귀포가 달려있죠..

7번은 설악산입니다..
오대산을 심히 고려를 했으나.. 이곳을 선택하였습니다...

8번은 태백산입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함백산입니다..

9번은 치악산입니다..
그때는 제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웠던 산입니다..
거기 원주가 있습니다...

10번은 팔공산입니다..
대구가 거기 붙어있습니다...

11번은 금정산입니다..
낙동정맥의 끝자락이며...거기 부산이 있습니다..

12번은 지리산입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입니다..

처음으로 보병을 안장한 곳은... 북한산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치악산이었나 봅니다...
아래 사진 왼편이 제 모습입니다..
이곳은 태백산이고.. 보병 안장을 마치니..해가 저물었습니다...
다른 곳도..보통 그랬습니다...
산을 오르고..
기도..기원을 하고...
땅을 파서 묻고..
해지기 전에 마치고..산을 내려와야 하니 서둘러야 할 때도 있었죠..
...

산 하나에 두번씩은 가야 했습니다...
산마다..예상되는 지점을 몇곳 선정하고...
선정된 그곳을 가서 어느곳이 적당한지를 확인하고 내려옵니다...
대개..여기까지가 하루나 이틀이 꼬박거리는 일입니다...
자리를 찾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봄과 여름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가을에 9월부터 보병 안장을 시작했습니다..
산을 다시 오르고...
기억했던 그 곳에 도착하면
먼저 기도문을 낭송하고...
공양 올리고..
가피를 구하고..
기원을 한 다음..
팔 하나가 안닿을 때까지..
혼신을 다해 구멍을 파고...보병을 묻었습니다...
실제로는 쉽지 않습니다...
온전히 잘 파지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1주일에 하나씩..3개월이 걸렸습니다..
...
이듬해에는
보병 안장을 기념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습니다...
안 쉬고.. 지리산에서 시작해서 설악산까지 가는 것이었어요...
다리가 끔찍하게 부어서 무다리가 되어버렸죠..
...

아래 사진은 계룡산입니다..
원만하게 안장이 잘 이루어진 날이었고..
끝나고나니..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길상보병(吉祥寶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보병에 대한 이야기는 1천 2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티벳으로 들어가신 빠드마삼바바님은..보병을 먼저 묻기 시작했습니다..
다르마를 전하거나 떼르마를 숨기는 귀한 일이 남아있었지만...
먼저..티벳의 땅과 하늘의 나쁜 기운을 진압하여..
다르마가 잘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티벳에서 세가지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보병과 푸ㄹ바 등을 이용하여..티벳땅의 기운을 다스리는 일이었고..
두번째로는 사원을 세우고.. 역경을 하고.. 다르마를 가르치는 일이었으며...
세번째로는 가르침을 떼르마(寶藏)로 숨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보병이 처음으로 티벳땅에 묻힌 것은 1천 2백년 전이었습니다...
1천년이 지난 19세기 초반에 이르러.. 보병의 기운은 다하고 효력은 멈추었습니다..

그 때..새로운 인연이 도래하여..
잠양 켄쩨 왕뽀님이 촉규르 링빠님과 함께..보병에 관한 떼르마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떼르마에는 과거의 기록과..보병의 재료와 만드는 방법 등이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직접 제조를 하고.. 적용도 시켜보았습니다..
보병을 많이 만들어서...세상에 두루 심기로 하였습니다..
이어서.. 새로운 1천년을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4대를 다스리고.. 
사악함이 줄어들고 조화로움이 증장되며..
다르마가 널리 융성하게 하게 할 목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프로젝트를 시작만 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세기가 지나...20세기 중반에 티벳에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잠양 켄쩨 왕뽀님의 환생자인 딜고켄쩨 린포체는 프로젝트를 이어받았으나..
그 비극의 순간에... 빈몸으로 히말라야를 넘어 부탄으로 들어갑니다...
이 비극은.. 보병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도록 자극하였나 봅니다...
수천개의 보병이 제작되었고...전세계에 안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보병 1호가 어디에 심겨진지 아십니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있는 곳..보드가야입니다.. 
..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딜고 켄쩨님이 하시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종사르 켄쩨 린포체님이 그 대업을 넘겨받았습니다..
북한에 배정된 12개가 있으나..아직 그 땅을 밟을 수가 없습니다.. 
머지않아..그 땅에도 보병을 묻을 기회가 돌아오기를 희망합니다..
이 프로젝트가 원만하게 마무리지어지기를 바라고..
이 안에 담겨있다는 빠드마삼바바의 가피와 불보살의 가피로..
세상을 치유해주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그 힘으로 세상에 붓다다르마가 널리 확산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구별의 모든 분들이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Tuesday, February 3, 2015

만주슈리(妙吉祥)의 대 성지

아주 오래전에.. 까트만두는 호수였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흰 눈 속에 박혀있는 푸른 눈이었다..
..
그 곳 호수에는 연꽃이 하나 자라고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세상의 첫번째 부처님인 비빠시 부처님이 던진 씨 하나가 자란 것이었고..
하나라고 하지만..1천개의 꽃잎을 펼쳤고..
눈이 부시게 빛나니..장엄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그 연꽃은 스스로 생겨났다하여.. 이름이 스와얌부(自生)이다..
수많은 성자들이 그곳을 찾아와 스와얌부에 예경을 하였다..
그것은 깨달음의 빛이었고..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거대한 빛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을 예경하려면.. 대단한 신통이 있어야 했다...
호수 가운데 피어있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부처님인 비슈바부 부처님 시절에..
바즈라짜르야 만주데바라는 자가 그곳을 찾아왔다..
그는 위대한 만주슈리의 분신이었다...
그는 오대산에서 선정에 들어있다가..
천안(天眼)으로..히말라야의 푸른 호수에서 빛나는 스와얌부 연꽃을 보았다..
그는 그 연꽃을 보러가기로 맘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그곳에 도착하여.. 저멀리 호수 가운에서 빛나는 연꽃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 때..만주데바의 맘 속에서 한가지 비범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래..이 호숫물을 확 빼버리자..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저 연꽃을 가까이 머무르면서 예경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그는 어마무시한 칼을 들어.. 호수물을 가두고 있는 땅을 갈라버렸고...
물길은 인도벌판을 향해 급류를 이루며 거세게 빠져나갔다...
나흘 밤낮을 흘러나가고서야.. 물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호수 아래에 숨어있던 질퍽한 땅은 드러났고...여기저기에는 아직 물 웅덩이가 남아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바그마띠 강을 바라보며 말한다...
까트만두에서 빠져나가는 저 물길은.. 어찌하여 저리 깊히 패여있단 말인가...?

연꽃이 피어있던 자리는 물이 아직 고여있었다...
작은 호수처럼..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까트만두에서 가장 낮은 밑바닥이었기 때문이다...
물속에 잠겨있던 연꽃은 모습을 드러냈고..
정상에서는 눈부신 빛이 장엄하게 빛나고 있었다...
연꽃 한가운데에서는 루비같이 붉은 화방이 이글거렸다...
바닥의 지세를 살펴보니.. 연꽃의 뿌리는 구제스와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뿌리를 박고 자란 연꽃은...
줄기를 뻗어 지금의 스와얌부에 꽃을 피운 것이다..
만주데바는 구제스와리와 스와얌부에 있는 호수를 덮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수를 메우기 전에...
그 호수 밑바닥에.. 커다란 거북이 한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만주데바는  거북의 등에 아주아주 거대한 나무 기둥을 세웠다...
스와얌부 연꽃을 기둥으로 받쳐주기 위해서였다...
기둥의 너비는 4m이고.. 높이는 80m에 가까웠다고 한다..
스와얌부 연꽃을 괴어주고나자...
거대한 기둥과 연꽃 줄기가 있는 부분을 덮기 시작했다..
봉분처럼 쌓아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  봉우리 위에 커다란 탑을 하나 세웠다...
그것이 지금의 스와얌부나트이다...
스와얌부나트는...
여기가 스와얌부 다르마다뚜의 연꽃이 숨겨진 곳이다..라는 표석이다...
..
만주데바는 자신의 머리를 잘라..그곳에 뿌렸다...
쌓아올린 인공 산에.. 나무가 거침없이 밀고 올라왔다...
그 나무는 만주데바의 머리카락이었다...
그 때.. 그 숲에는 원숭이가 서식하기 시작했다..
그 원숭이는.. 만주데바의 머리카락에 서식하던 `이`였다고 한다...
그러한 사연으로 스와얌부나트는 원숭이 사원이라 불린다..
성스러운 원숭이라 생각하여 아무도 못건드리고 있기에..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아진 상태다..
.......

스와얌부나트가 서있는 봉우리는 쌍봉이다...
하나의 산이지만... 봉우리가 둘이다..
스와얌부나트가 세워진 봉우리와 나란히 있는 봉우리를 만주슈리봉이라 한다...
만주데바가 스와얌부 연꽃을 덮고나서...오래토록 머물렀던 곳이다...
스와얌부나트와 만주슈리봉에 있는 사리탑은..만주슈리의 대성지이다..
네번 부처님이 바뀔 만큼이나 오래토록 여기에 머물면서..
아주 특별한 가피를 여기에 갈무리해놓았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하는 사실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한번은..7불 중 네번째 부처님인 끄라꾸찬다 부처님이 까트만두에 찾아오셨었다..
그 때 그분은 매우 상서로운 세 곳을 찾아가 예경을 하였다..
스와얌부나트..만주슈리사리탑.. 구제스와리..
그때 자룽카소르는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

만주데바는 오래 오래 살았다...
세번째 부처님인 비슈바부 부처님 시절에 나타나...
호수를 갈라..까트만두 만달라를 만들고..
스와얌부 연꽃을 지지하여..봉우리를 만들었으며..
만주빠탄이라는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네번째 부처님인 끄라꾸찬다 부처님 시절까지 살았다...
그는 다시...
네번째 부처님 시절을 지나..
다섯번째 부처님인 까나까무니 부처님 시대까지 살았고..
다섯번째 부처님 시절을 지나..
여섯번째 부처님인 까시야빠 부처님(迦葉佛) 시절까지 살았다...
그는..겁나게 많은 사람들을.. 스와얌부 만달라에 입문시켰고...
어느날 광명신을 이루고...홀연히 공중으로 사라졌다...
..
어느 성지이든...
상서로운 다르마의 꽃눈이 찍힌 사진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아래 사진에는 꽃눈이 내린다...
사진 속의 밤 하늘을 보라..
특히 탑의 왼편에 많이 내린다..

그때..그가 날아간 곳은 오대산이었다..
다시 오대산의 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진짜 오대산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중국의 오대산(五臺山)이라고도 하고...히말라야에 있다고도 한다...
그가 있는 곳은 빤짜찌라(五臺)이다....
빤짜찌라는 히말라야에 있는 아나바따쁘따 호수를 둘러싸고있는 다섯 바위봉우리라 한다..
오대(五臺)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다섯 봉우리의 이름은...쑤다르싸나.. 찌뜨라.. 깔라.. 간다마다나.. 깔리사이다..
아나바따쁘따 호수는 향산(香山) 아래 남쪽에 있다고 했다...
까일라스..혹은 까일라사..라고하는 산이 향산(香山)이다..
세상의 중심이라 했다..
히말라야 주변을 일컫는 말이다..
설산(雪山)이라고 했다...
까일라스의 별명이다..
네 강이 흘러나간다고 했다...
마나싸로바 호수에서 네개의 큰 강이 발원한다...
청량호라고 했다..
마나싸로바의 별명이다..
아나바따쁘따는 거기사는 용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모든 측면에서..이러한 설명에 부합하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용들이 사는.. 푸른 호수였을때의 까트만두이다..
앞서 말한 거의 대부분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오대산은 까트만두 뒷편..히말라야에 있다는 주장이 강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만주슈리의 성지는 까트만두에 다 몰려있는 것이다..
스와얌부나트..만주슈리봉..빤짜찌라인 오대산...

중국의 오대산은..이러한 설정에 조금 멀어보인다..
이러다가는... 한국의 오대산이 진짜 오대산이라고 우기게 생겼다...

아무튼...
그는 본신을 오대산에 두고 수많은 분신을 나투었다 한다...
만주슈리미뜨라..
비말라미뜨라..
롱첸빠..
직메링빠..
잠양켄쩨 왕뽀..
...

어느날 나가르쥬나라는 자가 스와얌부를 찾아왔다...
중론이라는 조그마한 책을 썼다는 그작자였다...
그때도..위 사진에서처럼..이렇게 깜깜한 밤중이고...다르마의 꽃눈이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스와얌부에 서서 머리를 잘라 주변에 흩뿌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수승한 이 탑에 온갖 나무가 자라나기를...!!``
그러나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은 신화가 되었고...
그 후로 사람들은..스와얌부나트를 팍빠싱꾼이라 불렀다...
수승한 나무라는 뜻이다...
그는 왜 만주데바와 같은 행위를 했을까..?
그것은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

세월이 흐른 뒤에 나가르쥬나는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그 때.. 사람들은 그를 산띠까르라고 불렀다...
산띠까르는 스와얌부나트를 다시 장엄하고..온갖 탑들을 지어올렸다...
만주슈리봉에도.. 만주슈리사리탑을 지어올렸다...
오늘날의 모습을 그때 거의 갖추었던 것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만주슈리 탑 아래 깊은 곳 어둠 속에서 지금까지 선정에 들어있다...
가끔.. 이곳에는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사람하고 나란히 걷고 있어도 말이다..
그 호랑이는 산띠까르이다..
사실..나가르쥬나..산띠까르로 나타난 이들은.. 만주데바의 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