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는 상대방을 너무 모르거나..
자기 정체성을 위해..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가...그사람의 글을 보고 불교를 판단한다면...
그는 잠시.. 건전하지 못한 미혹에 빠진 것이다..
브라흐만이나 공성에 관한 주제를 다룰때는...
진실을 분별하고..선택하는 입장에서..
적어도 이성이라는 오만에 빠져있는 학자들을 개입시키지 않는것이 좋다...
상카라는 이러하였다...
혹은 나가르쥬나는 이러하였다..
롱첸빠는 이러하였다라는 방식으로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차이는 뭐냐..
전자는 마음의 분별력에 의존하는 자들이고...
후자는 마음의 분별을 떠나.. 릭빠를 직관하는 자들이다...
직관한다는 것은...브라흐만이라는 주제를 인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접근하는 자는..적어도 다루고자 하는 이 본질에 대한 내적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이 학자들처럼 오만에 빠진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작은 지식이 위험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성의 힘을 너무 믿는다..
무엇이든 비판하려고 하는 학자들의 권력이 비대해졌다..
그것은 시대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라다크리슈난은...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이며...세계는 비실재적이다....라는 상카라의 논제를 반박하였다..
그는 아드바이타베단타의 불이론을 따르지만.. 환영설을 거부한다...
라다크리슈난은..
소승으로서의 불교를 속박으로 보고있다...
불교를 초전법륜의 눈으로 본다...
초전법륜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다르마이다...
초전법륜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린다고 말하고...
더러움을 씻는다 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한다고 말한다...
깨달은 성인이 될수는 있으나 부처가 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전법륜이 불교의 전부던가..?
이전법륜과 삼전법륜을 말하지 않고...어찌 불교를 얘기할 수 있을까..?
대승의 예불을 타락으로 보고있다...
부처님은 법등명 자등명이라했다는데...
어느새... 부처가 신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한다...
라다크리슈난은..
불교 속승을 힌두 딴뜨라의 모방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불교쇠퇴의 결정적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의 속전은 비쉬누교나 쉬바교보다 1천년이나 앞서고 있다...
먼저 생긴것이..나중에 생기것을 모방할수는 없지않은가...?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하시기 전에..다양한 속전(Tantra)을 설하셨고...
마하요가 아누요가의 불교 속전이 나타난것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직후이다..
아마도 라다크리슈난은 불교의 속전이..인도불교가 쇠퇴하기 직전에 생긴 것으로 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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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리슈난에 의하면..
초기불교가 유일하게 힌두교와 다른 것은 제사를 거부한 것이라고 한다...
대승과 속전에서 다양한 의례와 방편들이 나타나면서...힌두교와 다를게 없게되었다고도 한다...
다르마는 나무와 같다...
부처님이 던진 다르마의 씨앗은..
오랜세월동안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다르마 나무는 한순간에 자라지 않는다...
순서가 뒤바뀌지도 않는다...
다르마나무는 역사속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초전법륜의 바탕으로 성문승..연각승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몇백년뒤에는,,,이전법륜의 바탕으로 대승의 여러전승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몇백년뒤에는 삼전법륜의 바탕으로 속승의 다양한 전승이 꽃피우고 열매 맺었다...
부처님의 세가지 수준의 다르마는 이렇게 시간 간격을 두고 역사에 드러났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처음에 사람들은..눈에 보이는 세계를 본다...
다르마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적용된다..
성문 연각이란 그와같은 메카니즘이 적용된 다르마이다...
그러나 자량이 쌓이고.. 마음이 열리고...릭빠로서 세상을 보기시작하면서...
정토를 장엄한 세계를 보고..그 안에 있는 부처님과 보살과 본존과 다까 다끼니들을 본다...
다양한 신격들이 나타나지만...이것은 원시의 청정한 본질에 대한 자각일 뿐이다..
그것은 다양한 의식과 예식으로 표현이 된다...
그러한 내적 상징들이 고도로 발달하니... 그것이 속승(Tantra)의 다양한 방편들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르마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며...
다르마가 변질되었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그의 비판에서 드러났듯이..
라다크리슈난은 다르마의 자연스러운 전개를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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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리슈난은 불교가 초심을 버리고...점차 낮은계층의 대중들을 외면하였다고 말한다...
불교에 외적 카스트는 없지만...내적 카스트는 존재한다...
성문 연각의 수행은 누구나 입문이 가능하다..
큰 자량이 필요없으므로...많은 대중들이 수용된다...
하지만 대승이나 속승의 수승한 다르마는 수승한 인간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태생적 결함이 없고...
자량이 쌓이고.. 좋은 가문에 태어난자가 수행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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