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4, 2014

실망한자들을 위한 항산화 물질...

티벳의 정치권력적인 모습을 보고..
지나치게 실망하는 것을 중화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병주고 약주고다..
이것을 통해 여러분의 내성이 천신만큼이나 강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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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지각력...

지능 중에 공간지각이라는 지능이 있다..
주변 사물과 나의 관계성을 잘 이해하는 지능이다...
시공을 이해하는 지능은 중요하다...
내가 서있는 자리와 시대를 잘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행위가 크게 빗나가지 않으며...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공이 상사라이고... 
상사라의 어둠이 가장 강하다는 오탁악세에 살고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
오만한 판단을 하고..빗나간 행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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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는 반드시 시간의 녹이 슨다...
다른것으로 점점 변해간다...
부처가 다시 오고..
다르마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시간의 녹 때문이다...
그 문제가 심각한것이 아니라면...
부처는 거듭해서 올 필요가 없고..다르마는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
베다를 엄중히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베다는 과거불의 가르침에서 연유했으리라...
그러나 시간의 녹에 의해 본질이 크게 변하였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였다...
불교의 정체성을 논하는 자리에서...그것이 핵심임을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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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드마마바바는 시간의 녹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더군다나..아무리해도 답이 없는 오탁악세가 오리라는 것을 보았다...
그는 움직여야 할 자리와 멈추어야 할 자리를 보았고...
다르마를 여명처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를 위한 그의 비범한 선택이...떼르마였다...
타임캡슐이란 그렇다...
오랫동안 변하지않은 채 보존하기 위해... 방부처리를 하고..특히 산소를 차단한다...
흔히 하는 말로 밀봉이다...
밀납으로 틈새를 막는 것이다...
공기중에 노출시키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새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새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 오는 것....그것이 바로 떼르마(寶藏)이다..
새것 같다는 것은...관정...구전..지침.. 이 세가지가 새것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떼르마의 관정..구전..지침은 빠드마삼바바의 온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1천년 전에 불어넣었던 그 온기가 말이다...
그러므로..시공을 건너 보존된 떼르마의 가치에 위로 받길 바란다...



그와는 달리... 싸르마는 시공을 통해 구전이 되었다..
시공을 통해 전승이 된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나 싸르마 전승들의 타락에 비관하지 마라...
그들은 충분히 기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티벳설원에서 시작된 까귀는 두갈래 길을 선택했다..
까ㄹ마 까귀는 승원을 조직하여..대중앞으로 나아갔다..
둑빠까귀와 디궁 까귀는 설산 동굴로 들어가 세상으로 나가지 않았다...
수십만명의 까귀 수행자들이...
성산 까일라시(띠세)와  랍치와 짜리에 뿌리를 내렸다...
까ㄹ마 까귀 역시...일부는 대중 앞으로 나아갔지만..
일부는 동굴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서... 6백년 가량 다르마의 순수성을 보존한 것은..
동굴에서 물러나지 않은 자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ㄹ빠까귀의 역사는 놀라운 기적이라는 사실에 위로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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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근목피...

가난할 때는 피죽도 먹는다...
시절이 수상할 때는 초근목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근목피란...겔룩의 출현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연명하지 않았다면... 티벳의 정신은 영양실조로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므로...보수적인 승원체제가 나타난것을... 타락이라고만 보지말자...
승원체제의 보수적인 부양책에도 불구하고..티벳설원에도 깊은 밤이 찾아왔으니...
그들에게 16세기 17세기는 정말 새벽의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그 때는 정말...까귀도..사꺄도 기울고 타락하고 쓰러졌고...
전승의 명맥은 몹시 위태로웠다....
사나운 모닥불이 까지듯이... 싸르마 전승의 빛은 그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그 때의 타락은 나 역시 부정하지 않으며...여러분 역시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상사라의 변화는 운명적이라는 것에 위로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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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행위는 알 수 없다...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는..오백명의 상인과 한 배에 탔다..
그 배에는 악행을 꿈꾸는 악인이 끼어 있었다...
배에 탄자들을 모두 독살시키고.. 재물들을 차지하려했던 것이다...
전생의 부처는 악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생각하였다..
나를 위한다면... 살생의 업을 피해야 하리라...
그러나 모두를 위한다면.. 내가 대신 지옥에 간다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리라...
그러니 나는 모두를 위해 가장 큰 살생의 악업을 대신 지으리...하고 생각하고..
악인의 목숨을 거두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지옥에 가지 않았고..
팔 벌려 잴 수 없는 큰 자량을 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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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첸 감뽀는 보살의 환생이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티벳어의 창제로 티벳의 무지를 깨트렸으며..
불교를  받아들여...미개한 티벳민족의 정신을 개혁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놀라운 지략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그 와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리라....
중원의 주인이 되니... 중국이 엎드리고...네팔이 엎드리고...몽고가 엎드렸다...
그와같은 인연으로 중국황실의 여자.. 문성공주는 송첸감뽀에게 시집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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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송데첸은 보살이었을뿐 아니라...
빠드마삼바바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그는 할아버지 송첸감뽀의 위업을 이어...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서로는 파키스탄까지... 동으로는 중국 장안까지...
북으로는 소련근처까지..남으로는 인도 북부일대와 네팔,부탄까지 검을 휘둘렀다..
영토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만들어진다...
그는 왜 그런 일을하였을까..?
살생의 업은 분명 나쁘지 아니한가..?

영토는 마법같은 힘이 있다...
그 마법이란 하나의 강력한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영토가 작다면... 문화의 힘은 그만큼 작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방향이 긍정적이라면...영토가 가져다주는 덕은 매우 크다...
송첸감뽀와 띠송데쩬은 영토를 확장함으로서...
티벳불교의 내속승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멀리까지 확산시킬 수 있었고...
그 안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업을 선한 쪽으로 돌리고.. 자량을 쌓게 하였다...
작은 희생으로.. 큰 덕을 벌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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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달라이라마는...띠송데쩬의 후생이다...
띠송데쩬은 그후로...직메링빠로 오고.. 잠양켄쩨왕뽀로 오기도 했다..
5대 달라이라마를 보라...
그는 티벳의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태어나 강력한 왕이 되었고..
까ㄹ마까귀의 역모를 오줌 지릴만큼 겁나게 처단하고...
보수적인 겔룩의 다르마를 보존하고...
역사의 배후에 숨어있던 닝마를 무대 위로 떠오르게 한 자다...
16세기..17세기에 이르러 티벳의 정신은 어둠속으로 들어갔고...
티벳의 다르마는 보수적인 포지션을하였고...
5대 달라이라마는 파괴의 신..시바처럼 부수었다..
헌것을 없애고.. 새것을 일으킨 힘이었다고 하더라도...
중생은 이와같은 행위에 의심을 품으니...
우리가 보살의 큰 뜻을 어찌 알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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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것으로..선한것을 만들 수 있는 자는 부처와 보살이다...
중생은 불가능하다...
중생은 행위자체가 업을 결정한다...
악한것은 악한 업으로 돌아온다...
사물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서 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큰 뜻에 위로받길 바란다...

Wednesday, May 21, 2014

롱첸빠가 부탄으로 간 까닭은..?

닝마전승은 근세까지 티벳의 역사에서 정치에 가담한 적이 없다...

권력의 출발점인  큰 사원을 건립한 적이 없고..
자신의 존재를 크게 홍보한 적이 없고...
대중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한 적이 없고...
다른 전승의 권력을 탐하거나 추격한 적이 없고.. 빼앗은 적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성취자라도..
정처없이 떠도는 거지의 모습을 하고있거나...야생동물처럼..동굴에서 살 뿐이었다...
닝마가 처음 조직적인 형태를 띤것은...17세기말~18세기 초였다...
5대 달라이라마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닝마의 법왕을 세우게 된것은...20세기 후반이었다..
14대 달라이라마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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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첸빠는..
평생을 홀로 명상수행한 자다...
그는 일체 다르마에 통달하였고,,,
더러는.. 우주전체를 직관하는 책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권력을 탐한 적은 없다..
그의 삶을 본다면...권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그는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리고.. 쫓기는 입장이 되어 부탄의 깊은 계곡으로 은둔하였다...
그를 쫓은 자는 따이 씨뚜였다...
심심해서 쫓은 것이 아니고..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기 위해서였다...
따이 씨뚜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위험 인물이었다...
자신의 적대세력에 속한 자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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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 시뚜는 권력의 중심에 서게되었고...
거칠 게 없었고...
승승장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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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권력의 역사를 잠시 들여다보기로 한다...
롱첸빠께서 부탄으로 간 까닭은...
티벳불교 전승사이에 일어난  정치적 권력의 문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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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귀는 중원의 첫주인이었다...
정치권력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승원(僧院)이 발달함에 따라...
규범이 발달함에따라...
전승자들이 가사를 걸침에 따라...
나로빠와 밀라레빠의 정신적 고귀함은 나약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원동력은 대중적인 승원에 있지않고...설산의 동굴에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된다는 것은 세력을 키우고...
세력은 권력이 되고...정치적 주권을 남용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티벳의 정신이 쇠락한 이유이다...
아마도..빠드마삼바바께서 역사를 통한 전승을 포기하고..가르침을 숨기셨던 것은 이 부분때문일 것이다..
빠드마삼바바께서는 제자들더러 역사의 배후로 숨으라고 하셨다...
동굴에서 나아가지 말고...형태를 갖추지말라 하셨다...
나는 그의 선택이 옳다고 믿는다..
대중적 지지기반은 약하지만..
권력을 탐한 적이 없고..
다르마 아닌것에 물든 적이 없고..
최상의 견해를 보존한 닝마...
그것이 내가 닝마전승을 선택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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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빠드마삼바바의 행보와는 달리...
티벳에는 수많은 싸르마 전승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싸르마는... 신역전승(新譯傳承)이다...
닝마는 구역전승(舊譯傳承)이다...
닝마는 자신을 닝마라 부른적이 없지만...
소위 신역전승라 일컫는 싸르마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자신들과 구별하기 위해...빠드마삼바바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닝마라 부르게 되었다...
싸르마 전승의 선두주자는 마ㄹ빠 까귀였다...
마ㄹ빠 까귀는 거사..마ㄹ빠가 세운 전승이었다...
그는 나로빠와 마이뜨리빠로부터 배워서.. .
밀라레빠에게 전해주었고..
밀라레빠는 마ㄹ빠 까귀의 강력한 모델이 되었다...
그 후로 마ㄹ빠 까귀는 여러가지로 나뉘어지면서...
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는 대중 속에서 세력을 키워나갔지만...
일부는 성산에 있는 동굴에서 정신적 가치를 이어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마ㄹ빠로부터 시작된 까귀의 영향력은 17세기까지는 이어진것 같다...
동굴에서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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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사꺄전승은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하였고...
사꺄의 이름은... 사꺄 빤디따에 이르러 눈부시게 빛나게 되었다...
그 덕택으로... 사꺄전승은 세력을 얻고.. 설원에서 정치적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의 배후에는 징기스칸이 있었다...
그때...몽고는 중앙 아시아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꺄 빤디따와 그의 법손이 꾸빌라이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정신적 우월함으로..몽고의 마음을 뒤흔들어버리고 말았다...
몽고는 티벳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스승의 전승인 사꺄전승을 옹호하고 지지하였다...
그렇게 사꺄는 티벳의 권력을 쥐게되었다...
그러나 사꺄의 집권은 오래가지 않았다...
13세기 중반에서 14세기 중반까지.. 불과 1세기 동안이었다...
사꺄전승의 권력은 얄룽짱뽀에서 팍모두파 왕조가 출세함에따라 급격하게 축소되기 시작했다...
권력이 다시 까귀전승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짱지방에서... 중부티벳으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다..

까귀의 큰 가지인 팍모두파에서 다시 작은 가지를 친 따이시뚜의 법맥은...  
이처럼 정치적 권력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권력은 팍모두파 왕권을 확립하고... 사꺄를 강력하게 밀어냈다...
그 와중에...닝마의 롱첸빠는 적대세력으로 몰려.. 따이시뚜에게 목숨을 위협받게 되었다...
롱첸빠는 티벳중부 라싸 곁에 있는 예ㄹ빠를 재건하고...라싸에 마니사원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계획을 보류하고...부탄의 붐탕계곡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롱첸빠는 히말라야를 넘어...깊은 산악국가 부탄으로 은둔을 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10년을 머물렀고...
이 때.. 롱첸빠는 부탄에 여덟개의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그 중...몇개가 붐탕지방에 있는 것으로 안다...
타ㄹ빠링은 그 중 하나라고 한다...
그가 머물렀던 곳에는 의미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는 처음.. 쌈링이라는 마을에 머물렀다...
쌈링마을 위에 있는 최닥사원은...구루린포체의 명상동굴이 있는 곳이다...
최닥사원 위에는 롱첸빠의 명상동굴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롱첸 숙티라는 바위가 놓여있다...
롱첸빠는 그곳에 앉아..7보장의 나머지 절반가량을 써내려갔다...
그런 의미에서...롱첸 숙티는 티벳의 강리 뙤까르에 비교할 수 있다...
롱첸빠는 구술을 하고...
다쑹 사 라훌라는 기록을 하고...
호법신 에까자띠는 잉크를 준비하고...
바즈라싸두는 종이를 준비했다 한다...
이렇게 넷은 이 바위 위에 앉아...
붓다 다르마의 궁극적인 저작인 7보장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부탄에서 롱첸빠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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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탄여자 끼빨라를 만나 딸과 아들을 낳았고...그 아들은 롱첸빠의 법통을 이었다...
나중에 따이 시뚜는 롱첸빠의 마음을 알았다...
롱첸빠는 자신의 적으로 나설만한 인물이 아니고...나선적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롱첸빠의 각성과 지식에 감화되어...롱첸빠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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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까귀로 거의 넘어갔지만...15세기 중반까지...사꺄와 까귀의 두 권력은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둘의 싸움은 격렬했고...
수많은 사원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권력을 움켜쥐려는  유혹적인 충동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이 때 쫑카빠라는 민들레가 이 틈바귀 속에서 자라났다...
그는 보수적이지만 대중적인 승원의 체제를 만들었고...
두 세력의 틈바귀속에서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쫑카빠의 홀씨는 먼나라에까지 날아갔고..
보수적인 다르마로서 설득력을 가지고..커다란 지지의 영토를 구축하였다...
그 다르마의 이름은 겔룩이었다...
까담도..까귀도..사꺄도...겔룩이란 이름 속으로 점차 흡수되고있었다...
겔룩이 정치적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마도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집권세력에 대한 강한 심리적 반발때문이었으리라...
갈등과 고통이 많으면...사람들은 변화를 꿈꾼다...
그러한 변화에 대한 요구가 겔룩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중앙집권적인 승원체제는 겔룩을 급속도로 비대하게 키워나갔다...
사꺄를 보듬었던 몽고의 마음은 겔룩으로 기울었고...
몽고의 알딴 칸은 소남 갸쪼를 3대 달라이라마로 추대하여.. 정치적 권력의 중심에 세웠다..
그리고 기존의 정치질서와 구분하기 위해...황모를 쓰게 하였다...
팍모두파 왕조의 권력은 1세기만에 겔룩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얄룽에 세워진 권력은 다시 시가쩨로 이동하였다...
권력을 쥐자..겔룩은 라싸로 입성한다...
그때가 16세기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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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인해... 기존의 홍모와 새로 등장한 황모 사이에 대립각이 커지게 되었다...
까ㄹ마까귀를 지지한 짱 왕조는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한 겔룩을 질투하였고...군대를 키우게 되었다...
까ㄹ마까귀는 역성혁명을 허락하고 가담하였다...
까ㄹ마까귀의 역모는 실패하였다...
몽고의 구시리 칸을 등에 업은 겔룩은...까ㄹ마까귀를 거세게 후려쳤다...
결국..까ㄹ마까귀의 지지세력이었던 짱의 군대는 패퇴하고...
짱의 왕은 처형되었고...
까 ㄹ마까귀의 본산인 출푸사원은 봉쇄되고...승려의 시체는 산이 되었다...
동부에 있는 캄지방에서 서부 라다크에 이르기까지 까귀청소가 시작되었다...
10대 까ㄹ마빠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탄으로 바람처럼 달아났다... 
그 때 다치지 않은 것은.. 부탄에 있는 둑빠까귀뿐이었다...
그때 이후로 까귀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어버렸다...
그때가 17세기 중반이다...
이렇게 권력의 유혹에 빠진 까귀의 영화는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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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5대달라이라마가 세상을 떠나자...
겔룩의 영화도 풀잎의 이슬처럼 별안간 말라버렸다...
18세기초에...몽고와 중국의 연합군이 라싸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승원은 불타고...6대 달라이라마는 살해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의 개입과 통제가 시작되었다...
7대 달라이라마가 잠시 자리에 앉은 이후로...
8대에서 12대까지의 달라이라마 환생자는 모두 발견되자마자 살해된 것으로 안다...
등극해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19세기 후반까지 말이다...
티벳에 어두운 그림자가 깊숙히 드리워졌다...
티벳불교의 대부분의 전승은 끊어지거나...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티벳의 정체성 자체가 위협받았다...
이렇게 티벳고원에 타락과 비극과 슬픔이 극에 달했을 때...
티벳동부 캄지방에서.. 티벳불교를 각성시키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1천년동안 감추어진 빠드마삼바바의 각성이 족첸의 닝틱전승을 통해 수면위로 떠오르고..
전승을 초월한 초종파의 기운이 티벳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천년만에 핀다는 우둠바라 꽃과 같았다...
혹은 1천년만에 꺼내는 타임캡슐과 같았다...
다시 20세기 중반에 티벳은 비극을 맞이하였고... 
중국 공산당에의해 질그릇처럼 산산히 쪼개져 세상으로 흩어졌다...
부정적인면과 긍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잘못 꺼낸것일까..?
아니다...
적절한 시점이 아니었다면 꺼내지 않았을 것이고,,,
다시 꺼낸이상...시공의 어둠에 의해 다르마가 유린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21세기인 지금.. 부탄에는 롱첸빠가 꽂은 지팡이가 잘 자라고 있고...
나처럼.. 롱첸빠에게 미쳐서 영혼까지 팔아먹는 사람들이 지구를 덮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Saturday, May 17, 2014

천강에 비치는 달처럼..



상황의 작용으로..
달이 크거나 작게 나타나는 것처럼...
필요성의 작용으로..
스승은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물그릇의 작용으로..
달이 천강에 비치는 것처럼...
마음의 작용으로..
스승은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구름의 작용으로...
달이 밝거나 어두워지는 것처럼...
관념의 작용으로...
스승은 좋거나 나쁜 사람으로 나타난다...

업의 작용으로..
달이 편안하거나 귀찮게 여겨지는 것처럼...
상념의 작용으로..
스승은 확신을 일으키거나..불신을 일으킨다..

낮과 밤의 작용으로...
달이 뜨거나 지는 것처럼...
본성의 작용으로...
스승은 오고 가는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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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y 16, 2014

깔라차끄라 딴뜨라와 샴발라 정토..

깔라차끄라는 속전이다...
경전 속전을 통틀어서...
깔라차끄라 만큼 독특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체계는 없을 것이다...
깔라차끄라는..우주시공 전체를 하나의 거대 메카니즘으로 다루고...
그 시공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것을 깔파(劫)라는 개념으로 보며...
그 경험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으로서 파악을 한다..
인간이 혹은 용이 윤회를 거듭하듯이..이 우주 또한  윤회를 하는 셈이다...
우주라는 이 대깔파 안에는... 무수한 작은 깔파(劫)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깔파의 다양성이란 생각보다 크고...다양한 깔파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오묘하다...
인간마저도...그러한 여러 톱니바퀴 중 하나로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무수한 깔파들의 상호작용을 얘기하는 것...
나는 그것을 겁나게 다양한 것을 한번에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놀라운 인식이라 부른다...
그래서... 깔라차끄라는 메카니즘의 입장에서 과거를 설득력있게 분석하고..
현재 시공이 차지하는 자리를 알아차리게 하고...
미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기다리게 해준다...
나에게 마법이란 이와같은 것이다...
.................

깔라차끄라 딴뜨라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하시던 해에..
느닷없이 샴발라의 왕에게 전한 가르침이다...
이는 부처님이 가르친 모든 다르마 중에서 가장 수승한 다르마이다...
티벳에서 무상유가부 딴뜨라 혹은..내속승에 속하는 가르침이다...
11세기까지는 인도에서도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티벳으로 건너간 뒤로는..오직 티벳불교만의 전유물인듯이 여겨지게 되었다...
이 가르침은 지나칠만큼 독특하였기 때문에...
그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일어난적도 있었다..
그러나 깔라차끄라 딴뜨라는...성취자들을 통해 그 가치를 확연히 증명하였다...
현존하는 깔라차끄라 속전은...깔라차끄라 딴뜨라 약본과 그 주석서인 정광명이다...
두 저작의 토대가 된 근본속전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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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에 한 왕이 살고있었다...
그 왕은 다르마를 공부하기 위해..남인도 단야까따까에 머물렀다..
그의 이름은 쑤짠다라였고..티벳말로는 다와 쌍뽀라 한다...
그의 나라는 샴발라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의 앞에 석가모니부처님이 나타났고...
그는 깔라차끄라 속전을 가르침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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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단야까따까에서...
깔라차끄라 딴뜨라를 위한 큰 법회가 있었다...
그렇게해서 나는 깔라차끄라 속전과 인연을 지었다...
현재는 그곳에 아마라바띠라는 마을이 있다...
조용하고 작디작은 마을이 시끌벅적해지고...별안간 큰 도시처럼 변모하였다..
상인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전국에서 몰려와 큰 시장을 이루었고...
릭샤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꾸겨넣고서는 뻔질나게 오고갔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는..뿌연 먼지로 구름길이 되었다...
인도에 사는 거지란 거지는 다 여기에 몰려든 것 같았다...
2주동안 진행되는 야단법석의 규모는 대단하였다...
뒷편에 있는 입구에서...
관정을주시는 달라이라마님이 앉아계시는 법단까지는.. 수백미터쯤이지만..
맨앞에 따로마련한 자리를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이렇게 깔라차끄라를 위한 법회를 열면.. 보통 십만명.. 이십만명이 운집한다고 한다...
그리고..부처님께서 깔라차끄라딴뜨라를 설하신 남인도 단야까따까에서 법회를 연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마다 평범한 가정의 대문 앞은 만달라로 장엄되었다..
집안의 여자들은...흰가루를 한줌쥐고 손끝으로 만달라 수를 놓았고..
마지막에는 꽃으로 만달라의 중심과 사방 팔방을 장식하였다..
나는 매일아침..일부러 만달라로 길게 이어지는 동네길을 밟고 지나갔다..
그것은 심오하지는 않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



깔라차끄라 속전은 샴발라가 씨따강 북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샴발라가 어디에 있느냐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의견이 분분하며...
그 장소를 궁금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미궁에 빠트리고 있다...
그래서..그 실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오늘날의 중국 북서편에 있는 신장지방일거라고 추측하였다...
같은 맥락에서..타림강을 씨타강으로 보고 말이다...
그는 여러가지 증거를 들고있다...
타림분지는 제법 많은 불교도들의 고향이었다는 점..
과거에는 이곳이 물도 흐르고..나무도있는 곳이었다는 점...
상당히 많은 불교유적들이 이곳에서 발견이 되었지만..
지금은 모래속에 파뭍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
한편...샴발라국 사람들은 깔라차끄라 속전을 수행하여서..
누구라 할것없이..모두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세상에 있지만... 정토와 같고...릭빠를 자각한 자만이 이곳을 볼 수 있다 한다...
깔라차끄라 속전은..샴발라가 성산 까일라시 배후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이는 그곳을 까일라시 북편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까일라시 내부로 해석하기도 한다...
.............

쑤짠드라(다와쌍뽀)는 샴발라국으로 돌아가서 3년간 이것을 가르치고...
아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수하였다...
이렇게해서.. 여섯명의 왕에게 전승이 이어졌으며...
여섯명의 왕은 깔라차끄라 속전을 각각 1백년씩 가르쳤다고 한다...
디와쌍뽀와 그 뒤를 이은 여섯명의 왕을...샴발라의 7 다르마라자라 한다...
이 7 다르마라자를 이은 자가 있었으니...
야사라는 이름의 왕이었고.. 만주시리의 분신이었다...
그 역시 1백년동안 깔라차끄라 속전을 가르쳤으며...
그의 재위 기간 마지막 즈음에...
미개종족의 침략으로.. 나라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스트를 무너뜨리고..베다 의례를 버린다...
그는 모든사람들을 하나의 카스트로 통일시키고..첫번째 깔끼 왕(릭덴)이 된다...
이렇게 그는...깔라차끄라 속전이 말하는 스물다섯명의 깔끼 왕 중 첫번째가 되었다..
........
샴발라의 스물다섯번째 깔끼 왕이  서기 2327년에 왕위에 오른다고 한다...
그는 샴발라국의 마지막 왕이며...
3천년간 지속된..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가 끝난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그것은...새로운 부처가 세상에 나오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는 분노존 야만따까의 분신으로 태어나고..미개종족과 큰 전쟁을 치른다고 한다...
전쟁은 그의 승리로 끝나고...세상 전체에 다르마가 뿌리내린다고 한다...
사실상...거대한 전쟁이 일어나는 곳은 상사라 전체이고..
세상속에 있는 온갖 보편적인 미개함을 뿌리 뽑는다..
그가 무찌르는 미개한 적은...탐..진..치 삼독이다...
그가 들고있는 샴발라의 깃발아래 네 군대가 모일 것이다...
그 군대는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이다..
.........


그는 문명전체를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무지를 바탕으로...이기적인 반목과 소유를 위한 투쟁을 일삼는 문명을..
릭빠의 눈으로 보고.. 다르마의 본질을 추구하는 문명으로 바꾸어줄 사람이다...
그로인해.. 다르마는 지구의 보편적인 학문이 되고..
명상은.. 지구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며...
세상은..샴발라와 같은 정토로 변모할 것이다...

Thursday, May 8, 2014

오디야나는 어디일까..?



오디야나는...
연화생께서.. 8세 동자로 화생하셨다는 곳이자..
족첸의 초조이신..가랍 도ㄹ제께서 나셨다는 곳이고..
마하무드라 전승의 초조이신 띨로빠께서 나셨다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의미로..
매우 궁금할수 밖에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이 곳은 24대성지 중 하나다...
24대성지란 헤루까와 바즈라요기니의 만달라이다...
그 중심에는 차끄라쌈바라의 궁이 있다...
24대성지 중에서...히마밧이라 성지는 우리가 아는 띠세설산...까일라시이다..
고다바리는 랍치설산이고...
짜리뜨라..데비꼬따는 짜리설산이다...

릭빠의 눈으로 보는 자들에게는...
정토에  온갖 진귀한 보석으로 장엄한 부처의 궁으로 여겨지겠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자들에게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계곡사이를 울어대고...
돌무더기사이에 낀 망자의 옷가지가 나부끼는 곳일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들에게 24대 성지 중 하나라는 말이 대단치 않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다르마를 실현하는 장소로 사용할때에는...
그 의미가 형용할수 없을 만큼 커질지도 모른다...

모든 24대성지는 비밀스럽다...
어떤 경우이든...그 비밀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법은 거의 없다...
오디야나 역시..
어떤 장소보다도 궁금하고.. 알고싶어하는 장소임이 틀림없지만...
어떤 기록에도.. 이 장소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는 것 같다...

오디야나가 지금의 스왓이라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스왓은.. 산스크리트어.. 수바스뚜의 두리뭉실한 표현이다.....
`수`는 좋다는 뜻이고.. `바스뚜`는 거처.. 장소의 의미이다...
그러니까...스왓이란 그저 풍수적인 명당을 일컫는 말일 뿐이다..
인도의 풍수인 `바스뚜`는 지금.. 서양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다...
적어도 힌두의학인...`아유라베다`보다는 그렇다...
`바스뚜`에 관련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중국..한국의 풍수란... 인도 `바스뚜`의 문화적인 변형이다..


근데...
그곳에 가면... 스왓이라는 데가 엄청 많다..
여기도 명당.. 저기도 명당인 셈이다...
오디야나는 한 장소가 아닌 모양이다..
지역을 이잡듯이 뒤진 뒤에...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단다...
오디야나라는 것이...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듯이 국소적인 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빠뛸 린포체는 그의 저서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다나꼬샤라는 것이...제법 넓은 지역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연화생께서 화생하셨다는 다나꼬샤 호수가 작은 호수인줄 알았잖은가...?
그곳에 가면... 호수가 엄청많다...
그곳은 다끼니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다나꼬샤가 얼마나 넓냐면..남한의 절반만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친것만큼이나 될 터이다..
다나꼬샤란...치뜨랄..길깃..스왓이라는 세 장소 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디야나란..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티벳서부 샹슝지방..
인도 카시미르 지역에 걸쳐있는 방대한 지역인 셈이다..


우리는 들었다...
연화생..빠드마삼바바는..
오디야나라는 나라의 다나꼬샤 호수 한가운데에 핀 연꽃 몽우리 속에  화생하셨다고..
그런데...
다나꼬샤가...단순히 호수가 아니라...
온갖 자량과 비범함이 가득한 지역을 의미한다면..
다나꼬샤의 가운데에 있는 연꽃이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어떤 지역..성지의 중심일 수 있다...
조사해본바에 의하면...대성지는 대개.. 풍수적 명당이다..
이것은 내가 나의 풍수적 안목을 걸고 보장한다...
.............
해석을 해보자면..
다나꼬샤는 연꽃이 물에 떠있다는 연화부수(蓮花浮水)의 길지인셈이다...
그 성지의 특성을 연꽃에 비유했으니...
그 주변의 지역은 당연히 연꽃이 떠있는 물이 되어야하는 법이다..
그렇지않으면... 다나꼬샤라는 넓은 지역을 물로 볼수 있는 방법이 없다...

Saturday, May 3, 2014

진아..브라흐만..창조.


무아...진아..

무아는 공성에 위배되지않고..
공성은 여래장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을 위해 세가지 법륜으로...세가지 견해를 말씀하셨다...
초전법륜의 무아,,이전법륜의 공성..삼전법륜의 여래장...
진실을 보는 눈의 깊이는 다를지라도...분명 같은 것을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힌두의 진아는 무아도 아니고 공성도 아니고..여래장도 아니다..
다른 개념이다...
무아와 공성과 여래장의 개념에  접근하려했던 개념이 있다...
그것은 브라흐만이다...
그러나 진아...아트만이 발목을 붙잡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아는 무아이거나 여래장일수 없다..
알라야(아뢰야식)의 의미를 가지고...뒤로  물러나야 한다...
진아를 불성이나 여래장의 의미로 보면... 커다란 패착이다...
....

우파니샤드를 직관하고.. 불교를 수용하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9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상카라는..
인도불교가 티벳으로 거너가고...
빠드마삼바바께서 티벳으로 건너가던 당시에 살았다...
빠드마삼바바가 티벳에서 내속승을 가르칠 때...
그는 아드바이타베단타를 가지고...세상으로 나아갔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 자리매김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다른 힌두철학들이.. 힌두를 가장한 불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같은 어미의 배에서 나왔는데..근본이 다른것처럼 여겨졌다..
다른 종교들은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힌두의 정체성은 위협받고...
아닌게 아니라..
외부세력들을 향한.. 힌두의 자존심을 건 투쟁에서..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우파니샤드를 직관하고..불교의 중관과 유가행의 가르침을 수용했다...
불교는 베다에서 비롯되지않았으니...
6파철학과는 뿌리에서 다르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 불교적인 향기를 발산하자..
힌두철학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난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불교는 그만큼..뿌리가 다른 것이었다...
베다의 자식들은...아드바이타베단타를 영토밖으로 밀어내려고 하였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힌두철학을 가장한 불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드바이타는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아트만과 브라흐만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브라흐만은...니르구나 브라흐만이다...
브라흐만의 본질은 언설로 지적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실존Sat...의식Cit..지복Ananda이다...
다른말로 하면...원시청정의 공성..명징한 자각..편만한 자비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세가지 토대가 있다...
브라흐마수뜨라.. 우파니샤드..바가바드기타가 그것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를 따르는자들은 이것을 공부한다...
수용하는 자세로 받아들인다면...하나 더 있다...
대승불교의 중관과 유가행이다....
이 네가지가 아드바이타베단타를 만들었다...

그는 6파철학을 논파하고...베단타의 오류를 개선하였다...
아드바이타의 개념은 그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베단타 안에 있었다...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베단타 안에 이미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모순을 타개해나갔다...
아드바이타베단타의 토대를 마련해준자는 상카라의 스승의 스승이었다...
상카라의 스승은 그의 비범함을 보고 아드바이타베단타를 맡긴다..
``내가 이것을 줄터이니...너의 입심을 발휘해라...``
그는 마치..잠양켄쩨왕뽀의 생각을 언어로 정리한 잠괸꽁뛸로되타예 같았다...
상카라는 문장을 해득하고...정리하고..주석을 다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용어가 기존의 힌두용어이니...베꼈다는 증거는 보이지않는다..
심증은 있는데..물증이 없다고 할수 있다...
적어도 아드바이타베단타는 불교는 아니다..
불교를 부분수용한 힌두철학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

둘은 분명히 다르다...

힌두의 본질과 불교의 본질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힌두인들이 말하는 본질과 불교인들이 말하는 본질사이에..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지..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말할수 있는자는 적다...

불교의 모든 전승은...부처님의 세가지 교설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서로 근본이 대립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바탕과 밑그림은 하나로 하고..저마다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하는 것이다...
붓다다르마는 경승과 속승이 대립되지 않는다..
속승은 부처님의 삼전법륜을 바탕으로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닝마의 9부승은 아홉가지로 갈라지지만... 서로 근본적으로 대립되지는 않는다..

중관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중관은 깊은 의도에 의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자립논증..귀류논증...
둘은 관점의 차이가 있으며..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
수행의 차제와도 관련되어있다..
어느 하나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차이가 있고...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티벳은 귀류논증을 수용하였다...
그리고..다른 필요성과 의도가 여기에 개입되었다...
귀류논증이..자공설과 타공설로 나뉘어진 것이다..
귀류논증 타공설은...붓다다르마의 최상의 견해에 맞닿아 있다...
타공설은...유가행의 미륵오론이나.. 족첸의 견해와 비교할 수 있다...
중관의 포괄적인 의미는 부처님의 이전법륜이다..
공성의 이치를 논한다...
중관이 말하는 공성의 이치는 수준에따라 미세하게 갈라진다...
중관과 유가행과 족첸사이에도 작은 차이가 발견된다...
여러분은 이 차이를 분간하고 수승함에 따라 순위를 정할수 있다고 보는가..?
이것을 분간할수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이처럼 아주 미세한 차이를 논하는 이유는  무얼까..?
수행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를 치열하게 논하는 집단들이....
아드바이타베단타와 중관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는다...
어떤 분야의 장인들은 미세한 차이를 본다..
미세한 차이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안다...
개당귀와 참당귀는 정말 비슷하다..
둘을 구분하는 것은.. 약초를 캐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개당귀는 조금만 잘못먹어도 거품물고 쓰러지는 독초이지만...
참당귀는 매우 유익한 약초이기 때문이다...
나는 약초의 달인을 만난적이 있다..
그는 1백가지도 넘는 참당귀를 구분하였다...
어떤 것은...설탕만큼이나 단 당귀가 있었다...
그 당귀는 오래된 산삼보다 훨씬 희귀하다고 한다...
약초꾼은 개당귀와 참당귀를 한 눈에 알아본다..
건성으로 보아도 안다..
...............

갈등이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

다르마의 입장에서...6파철학의 갈등이란 불교처럼 미세한 부분이 아니다...
근본 프레임자체가 어긋나있는듯이 보인다...
같은 베단타안에서도...분파간에 차별이 심하다...
정체성을 논하는데...자체대립이라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베다의 정체성이 확립되려면..
그로부터 나온 모든 철학이 개념적으로 같은 토대를 이루어야 한다...
모든 힌두철학이 자체 모순을 극복하고...근본적으로 같은 토대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불교와 정체성을 논해야 할것이다..
사실 이 문제가 존재하는 한...
아드바이타베단타가 불교철학과 비교가능하다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눌 자격이 생기질 않는다...

부분만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체성이란.. 부분만가지고 논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에 지적했던 것처럼...
힌두철학은 대부분 극심한 모순투성이인데다가...
화해할수 없을만큼 서로 크게 다르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썩은 사과의  보기좋은 부분과 같다..
보기 좋은 부분을 내보이면서...정체성을 논할수는 없다...
썩은 것이 정체성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되지않는가..?
아드바이타베단타의 가치는...힌두철학에서 가장 높은 가르침이라는 것에 있지 않다...
힌두철학의 극심한 갈등을 어느정도 해소하고...
전체를 결속할 수 있는 끈을 마련했다는 것에 있다..
그 시도는 어느정도까지는 성공한듯이 보인다...
........

불이일원론...

가우다파다는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의 토대를 세웠다.....
그는 상카라의 스승의 스승이었고..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힌두철학와 불교철학의 두 세계를 연결하였다..
그렇지만 차이도 있었다...
아트만의 실존을 받아들이는 대신 연기법(緣起法)은 포기하였다...
불교는 연기법에 따르지만...가우다빠다는 실재를 직관하는 방법을 썼다...
그말은... 지혜를 강조하고.. 방편은 결여되어있다는 뜻이다,..
6조 혜능 이후의 선()이 그러한것처럼 말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의 수행은 그처럼 지혜에 편중되어 있다...
방법의 핵심이...중관...마하무드라.. 족첸의 심식부와 닮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혹은 족첸의 떽최(공성)를 수행하지만.. 퇴갤은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베단타의 문제는 뭘까..?
견성은 있지만..성불은 없다는 뜻이다...
법신은 체득하지만... 두가지 색신을 얻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중국의 선()처럼 성불의 가능성이 사라진 셈이다...

지혜와 방편의 포괄적 운용...
불교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그 위대함은 주로 속승에 나타난다...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법신을 체득한자라도... 미숙한 홍광신은 이룰 수 있다...
수승한 홍광신이나 광명신은 이루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

공성을 논하지만 공성이 아니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공성을 논한다...
그러나 아드바이타베단타와 중관의 차이는 매우 크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건성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공성의 이치를 논한다 하지만...
근본에서 진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공성의 견해는 무아의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그들이 말하는 아드바이타(不二)라는 것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불이(不二)이다..
공성의 입장에서..하나 혹은 전부는 공성이 아니다...
궁극적인 하나인 아트만도..아트만의 무한집합인 브라흐만도 공성의 이치에서 벗어난다..
둘이 결합하여 하나가된다는 것도 공성의 이치에서 벗어난다..
아드바이타라 말하지만.. 아드바이타가 아니다...
기본이 마련되어있지않으므로.. 논할수 있는 바탕이 없다..
그러므로...아드바이타베단타가
중관의 타공설이나 유가행의 법법성분별론... 족첸의 견해와 논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베다는 아트만을 버려야 한다..

베단타에서..아트만과 브라흐만은 두 극처럼 연관성을 가지고 대비되고있다...
이러한 관계의 대비성이...브라흐만의 의미에 악영향을 미친다...
베단타에 의하면...아트만은 원자크기만한 극소분자이다..
아트만은.. 무명을 버리면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며..
영원히 브라흐만을 구성하는 한부분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트만이라는 하나의 입자가 무수하게 집합한것이 브라흐만이라는 개념이다...
공성이란...하나인것도 아니고... 모든것을 합친 전체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트만도 공성에 부합하지않고... 브라흐만도 공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이거나 전부인것은 마야로서만 연기(緣起)적으로 나타날뿐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의 진아나 브라흐만은... 마야로서만 존재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중관과 논쟁이 불가하다...
중관과 논쟁할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 있다...
..................

혹은..아트만은 알라야여야 한다...

아트만(진아)의 의미가 알라야(아뢰야식)라면..
힌두철학이 안고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아트만이... 알라야의 개념이라면...
연기적으로만 나타나고...
공성으로서의 브라흐만의 본질에 그림자를 잠시 드리울뿐이기에...
본래 완전한 브라흐만(공성)의 개념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자아로서의 알라야는 윤회의 주체이고 연기(緣起)의 뿌리이다...
그것은 경험을 저장하고..
개별적인 인격을 형성하며...
가장 보편적인 언어.. 영혼의 의미와 유사하다...
알라야...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연기(緣起)적으로만 나타난다...
브라흐만의 입장에서  보면... 알라야는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어떤 것도 개체나 전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성의 견해에 굳건히 서고..
아트만을 알라야로보면 된다고하였으나...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
6파철학..혹은 아드바이타베단타는 불교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힌두의 정체성이 일시에 무너지는 셈이다...

상카라가 완전한 다르마를 세우지 못한것은..
버려야 할 개념...아트만을 끝내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은 것이리라...
힌두의 영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트만을 지키고... 다르마는 버렸다..
힌두를 지극히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종주국..인도가 바로 서는 날이 오려면...
삼세 부처의 완전한 다르마를 세우려면...
과거의 유물인 베다를 버려야 할 것이다...
과격하지만 완전한 처방이다...
..................

세상은 브라흐만이 창조하였을까..?

자신이 자신안에 자신을 창조했다는 의미라면...창조가 맞다...
브라흐만은 자기안에.. 자기환영적인 거대한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러나 피조물은 없다...
일종의 자기연출이기 때문이다..
브라흐만 안에 브라흐만의 그림자가 던져졌다..
그것을 마야라 한다...
마야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야다...
마야를 창조했으니.. 실제로는 창조한 것이 없다..
마야라는 것은 실존이 아니니...
이 창조는 창조된 대상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자기내포적이다...
자기내포적이라는 것은 피조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창조물은 이원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둘이 아니다...
하지만....
브라흐만이.. 브라흐만 자신이 아닌 다른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의미였다면...
이 세상은 창조된게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브라흐만은...자기안에 홀로그램과 같은 자기를 창조하고...
나타난 브라흐만은 연기적인 착시로서 존재한다...
베단타가 불이일원론이 맞다면.. 이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아트만을 연기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불이일원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트만을 윤회의 주체인 알라야(아뢰야식)으로 보지않는다면...
근본적인 모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것이 베다에 기반한 모든 철학이 가진 원초적 문제이다...
모든 힌두철학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이 두개의 본질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다르마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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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와 브라흐만의 합일

불교에서 자아와 공성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되돌아갈 것도.. 결합할 것도 없다...
어떤 부분적인 자아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공설의 입장에서 보면... 정광명을 이야기하지만...그것은 자아가 아니다...
깨달은 부처라하더라도.. 그 자신을 의미하는 자아는 없다...
힌두철학에서 진아와 브라흐만은 동일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결국.. 진아는 없다..
그러므로 합일도 없다...
무명이 벗겨지면... 합일한다고 생각하는 진아는 찾아봐도 없다...
인지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자도 없고.. 인지의 대상도 없다..
그것이 진정한 브라흐만이다..
본래부터
브라흐만의 본질은...
무시이래  모든 중생의 본질이고..
그것을 자각하는 성문..연각.. 보살.. 금강살타..비드야다라의 본질이고..
궁극적인 경지...부처의 본질이다...
무아는..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뜻이다...
공성은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뜻이다...
원시청정의 하늘에는 하나로서의 아트만이 없다...
무한소가 없으므로...무한소의 거대집합으로서의 브라흐만도 없다..
여래장은..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뜻이다...
명징한 자각은.. 원시청정의 하늘을 꽉채우지만...
무한소의 아트만도 아니고 무한대 집합으로서의 브라흐만도 아니다...
여래장에는 진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진아(아트만)가 없으니 합일하는 자도 없고... 해탈(지반묵티)도 없다..
연기로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마야일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불이일원론이다...
아드바이타베단타가 끝내 불이일원론이 되지못하는 것은...
아트만을 놓지 않은 채.. 브라흐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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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리슈난..

라다크리슈난은..
아드바이타베단타를 가지고..불교의 초전법륜과 비교를 하였다...
정당한것은 아니지않은가..?
어느산이 더 높은가를 따지는데..
이 산 산꼭대기와 저 산 구릉을 비교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남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불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라다크리슈난은 자기무지를 심각히 드러냈으며...
그로인해...자신의 가치를 손상시킨 것이다...
학자의 무지는 대중들에게도 끼치는 영향이 크다...
그것은 어찌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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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바이타베단타..서양의 지지를 얻다..

라마나마하리시...라마크리슈나..비베카난다는..
아드바이타베단타의 후예들이다...
그들의 영향으로...서구 정신세계에 아드바이타베단타의 불이일원론이 알려졌다..
서구적인 마인드를 가진사람들에게는...
힌두의 영향을 받은 아드바이타베단타가 중관이나..족첸보다는 입맛에 맞았을 것이다...
서양인들에게..친근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고싶은 생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입맛에 맞으면..우호적인 입장이 되고...다른쪽에 대해서는 배타적일수가 있다...
아드바이타베단타는 서양의 정신적인 흐름을 일으킨다...
아드바이타는...새로운 신비주의의 토양이 되고...뉴에이지 운동의 원동력이 된다...
물론... 새로운 신비주의의 옷을 벗겨보면...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그리고...가치에 목마른 젊은 한국인의 정신은..
화석화된 한국불교에 등을 돌리고...
서양인의 옷을 입은 아드바이타베단타나 티벳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아드바이타베단타에 좀 더 우호적인 평가를 보게 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학자들의 이러한 편향적인 평가들을 아무 검증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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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철학의 산 정상에는 베단타가 있다...
베단타는 베다가 쓴 승리의 월계관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그에게 불교가 말한다...
``알다시피...내가 니 에미다..
너는 네 스스로 존재할수없어...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나를 모방하고...
나를 닮은 것으로서 내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더냐..!``

티벳의 토속종교인 뵌교에게 불교는 말한다...
``알다시피...내가 니 에미다..
너는 네 스스로 존재할수없어...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나를 모방하고...
나를 닮은 것으로서 내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더냐..!``

신지학에서 시작하여 연이어 나타난 새로운 신비주의에게 불교는 말한다...
``알다시피...내가 니 에미다..
너는 네 스스로 존재할수 없어...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나를 모방하고...
나를 닮은 것으로서 내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더냐..!``

라다크리슈난의 생각...

라다크리슈난은...
비판하는 상대방을 너무 모르거나..
자기 정체성을 위해..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가...그사람의 글을 보고 불교를 판단한다면...
그는 잠시.. 건전하지 못한 미혹에 빠진 것이다..


브라흐만이나 공성에 관한 주제를 다룰때는...
진실을 분별하고..선택하는 입장에서..
적어도 이성이라는 오만에 빠져있는 학자들을 개입시키지 않는것이 좋다...
상카라는 이러하였다...
혹은 나가르쥬나는 이러하였다..
롱첸빠는 이러하였다라는 방식으로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차이는 뭐냐..
전자는 마음의 분별력에 의존하는 자들이고...
후자는 마음의 분별을 떠나.. 릭빠를 직관하는 자들이다...
직관한다는 것은...브라흐만이라는 주제를 인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접근하는 자는..적어도  다루고자 하는 이 본질에 대한 내적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이 학자들처럼 오만에 빠진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작은 지식이 위험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성의 힘을 너무 믿는다..
무엇이든 비판하려고 하는 학자들의 권력이 비대해졌다..
그것은 시대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라다크리슈난은...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이며...세계는 비실재적이다....라는 상카라의 논제를 반박하였다..
그는 아드바이타베단타의 불이론을 따르지만.. 환영설을 거부한다...

라다크리슈난은..
소승으로서의 불교를 속박으로 보고있다...
불교를 초전법륜의 눈으로 본다...
초전법륜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다르마이다...
초전법륜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린다고 말하고...
더러움을 씻는다 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한다고 말한다...
깨달은 성인이 될수는 있으나 부처가 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전법륜이 불교의 전부던가..?
이전법륜과 삼전법륜을 말하지 않고...어찌 불교를 얘기할 수 있을까..?

라다크리슈난은..
대승의 예불을 타락으로 보고있다...
부처님은 법등명 자등명이라했다는데...
어느새... 부처가 신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한다...

라다크리슈난은..
불교 속승을 힌두 딴뜨라의 모방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불교쇠퇴의 결정적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의 속전은 비쉬누교나 쉬바교보다 1천년이나 앞서고 있다...
먼저 생긴것이..나중에 생기것을 모방할수는 없지않은가...?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하시기 전에..다양한 속전(Tantra)을 설하셨고...
마하요가 아누요가의 불교 속전이 나타난것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직후이다..
아마도 라다크리슈난은 불교의 속전이..인도불교가 쇠퇴하기 직전에 생긴 것으로 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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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리슈난에 의하면..
초기불교가 유일하게 힌두교와 다른 것은 제사를 거부한 것이라고 한다...
대승과 속전에서 다양한 의례와 방편들이 나타나면서...힌두교와 다를게 없게되었다고도 한다...

다르마는 나무와 같다...
부처님이 던진 다르마의 씨앗은..
오랜세월동안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다르마 나무는 한순간에 자라지 않는다...
순서가 뒤바뀌지도 않는다...
다르마나무는 역사속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초전법륜의 바탕으로 성문승..연각승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몇백년뒤에는,,,이전법륜의 바탕으로 대승의 여러전승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몇백년뒤에는 삼전법륜의 바탕으로 속승의 다양한 전승이 꽃피우고 열매 맺었다...
부처님의 세가지 수준의 다르마는 이렇게 시간 간격을 두고 역사에 드러났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처음에 사람들은..눈에 보이는 세계를 본다...
다르마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적용된다..
성문 연각이란 그와같은 메카니즘이 적용된 다르마이다...
그러나 자량이 쌓이고.. 마음이 열리고...릭빠로서 세상을 보기시작하면서...
정토를 장엄한 세계를 보고..그 안에 있는 부처님과 보살과 본존과 다까 다끼니들을 본다...
다양한 신격들이 나타나지만...이것은 원시의 청정한 본질에 대한 자각일 뿐이다..
그것은  다양한 의식과 예식으로 표현이 된다...
그러한 내적 상징들이 고도로 발달하니... 그것이 속승(Tantra)의 다양한 방편들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르마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며...
다르마가 변질되었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그의 비판에서 드러났듯이..
라다크리슈난은 다르마의 자연스러운 전개를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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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리슈난은 불교가 초심을 버리고...점차 낮은계층의 대중들을 외면하였다고 말한다...
불교에 외적 카스트는 없지만...내적 카스트는 존재한다...
성문 연각의 수행은 누구나 입문이 가능하다..
큰 자량이 필요없으므로...많은 대중들이 수용된다...
하지만 대승이나 속승의 수승한 다르마는  수승한 인간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태생적 결함이 없고...
자량이 쌓이고.. 좋은 가문에 태어난자가 수행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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