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15, 2015

싸꺄 티진 존자님의 생애 이야기

가문(家門)

사캬 티진 존자님은 1945년에 티벳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티벳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인 사캬종(灰土宗)의 종정(宗正)이다.. 
존자님은 `쾬(Khön)`이라는 가문(家門)에 속하신 분으로, 
그 가문의 역사는 티벳의 초기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티벳에 불교가 들어온 것보다 먼저 일이다..

쾬(Khön) 가문은 세가지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 첫번째는 `하-릭`이다..
그것은 천손(天孫)이라는 의미이다… 
그 이름은 `야빵 케`라는 선조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색계천(色界天)에서 하강하신 천자(天子)의 손자의 손자라고 여겨지고 있는 분이다..

후에, 이 가문은 `쾬 기 둥`이라는 두번째 이름을 얻었다.. 
이것은 쾬의 씨족(氏族)이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은 `야빵 케`가 락샤사(羅刹)를 물리쳤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지만, 
사실은 무지를 다스리는 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많은 세대가 지난 후, 
11세기에 쾬 꽁촉 갤뽀라는 유명한 스승이  1073년에 사캬(灰土)라는 지역에 사원을 건립하여.. 
영예로운 사캬종(灰土宗)을 일으켜 세웠다.. 
이렇게 해서 이 가문은 `사캬파`라는 세번째 이름을 얻었다..

이후에 쾬가의 후손은 혈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이 후손 중에는 세 보살의 분신(分身)으로 화현하신 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세 보살이란 만주슈리(妙吉祥), 아왈로끼떼슈와라(觀世音), 바즈라빠니(金剛手)을 말하는 것이다.. 유명한 스승들이 이 혈통에서 많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사캬 오조(五祖)이신 
사첸 꿍가 닝뽀, 소남 쩨모, 딱빠 갤쩬, 사꺄 빤디따, 최갤 팍빠 같은 분이 포함되어있다..



탄생(誕生)

존자님은 아버지 ~ㅇ아왕 꿍가 린첸과 어머니 소남 돌까르 사이에서, 2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위로 큰 누이인 치메 틴레 루딩, 형인 직달 뒤둘, 그리고 작은 누이인 아양이 있었다.. 
그러나 형이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리자..부모님은 아들을 얻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이셨다..
성산 까일라스를 거치고 네팔을 지나 라싸와 남부 티벳까지 순례를하였다..
사캬의 법좌를 이을 아들이 필요하였으므로, 이것은 사캬전승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였다.. 
부모님은 마침내 라싸 북편 펜뽀지방에 있는 나란다 사원에 당도하였고, 
주지스님인 ~ㅇ아왕 로되 린첸 린포체와 함께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 덕분이었는지 어머니는 태기(胎氣)가 있었다..
그를 갖기 전에, 어머니는 청명한 하늘에서 노란 말 한마리가 품으로 달려들고, 
무시무시한 새들에게 쫒기는 꿈을 꾸셨다.. 
꿈에 특별한 관정들을 받고 기도를 올리자, 
마침내 새들은 물러나고, 말은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품 속으로 들어왔다..
이 때에 어머니는 임신을 하였고,그 이후로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이어졌다고 한다.. 
라마 ~ㅇ악로 린포체께서도 꿈을 꾸셨는데.. 
꿈에서 공중에서 해와 달과 별이 동시에 나타나더니.. 세 빛이 하나로 합쳐졌다고 한다...
그리고 공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 아이는 그대가 원했던 아들이다.``

존자님은 목유년(木酉年) 음력 8월 초하루날..
그러니까 1945년 9월 7일 아침 동틀무렵에 태어나셨다… 
사캬의 가르침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신 
꿍가 린첸께서 태어나셨던 그 방에서 산통도 없이 태어나셨다.. 
그 곳은 시가쩨 근처 쩨동에 있는 사캬의 성지였다..
그의 탄생을 알리는 상서로운 징조들이 많았다.. 
태어나는 동안 하늘은 온통 비범한 무지개로 가득했다..
그가 태어난 집 지붕 위로 둥근 무지개가 드리워졌다...
뒤이어 백발이 성성한 80세 노인이 
존자님에게 장수불(長壽佛) 탱화와 버터, 치즈를 공양으로 올렸다..
그리고  힌옷을 입은 젊은이가 나타나, 1백마리의 암소에서 짠 우유를 수정그릇에 담아 올렸다.. 
쩨동의 족장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확인하고자 했을 때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켄뽀 ~ㅇ아왕 담최는 태어난 아이의 이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혀에 특별히 만든 감로수로 문수보살의 종자자인 `디`자를 써 넣었다고 한다...

그의 탄생 직후에, 될마 궁의 전통에 따라.. 장수불 관정을 받았다..
그리고 `아유 바즈라`라는 산스끄리뜨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은 장수금강(長壽金剛)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스승이신 담빠 린포체께서는 라마 ~ㅇ악로 린포체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는데에 있어, 그대는 큰 수고를 했다.. 
이제 사캬종의 가르침의 미래는 보장받았다… 
그리고 나는 늙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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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님이 대 떼르뙨, 오르겐 틴레 링빠 (아빵 떼르뙨)의 환생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암시들이 있었다..
아빵 떼르뙨은 빠드마삼바바의 진정한 대리자로 오신 분이자, 
큰 깨달음을 지니신 분의 특징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바위같이 딱딱한 물체도 통과할 수 있었고, 
수많은 보장(寶藏) 가르침을 발견하였다.. 
나중에 인도에서 그는 아빵 떼르뙨의 섭정을 만나, 
아빵 떼르뙨의 모든 보장을 전수받고.. 떼르마의 원본을 건네 받았는데..
그것은 존자님이 이 보장전승의 계승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존자님이 아빵 떼르뙨의 환생자라는 첫번째 예시는..
다끼니가 아빵 떼르뙨에게 예언했을 때 있었다.. 
다끼니는 그가 다음생에 샤캬 법좌(法座)에 오르리라고 하였다…
어린 아이였을 때, 부모님이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자신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고,  집은 텐트였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골록 지방 사투리를 썼다..
그것은 아빵 떼르뙨이 쓰시던 그 사투리였다… 
한번은 아빵 떼르뙨의 아들이 이 곳을 방문했는데, 
이모님이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느냐고 묻자, 
존자께서는 이 사람은 저의 아들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셰자라는 아빵 떼르뙨의 제자를 만났을 때는.. 
아빵 떼르뙨이 예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말로 그에게 충고를 해주는 것이었다...
존자님은 그를 툽뗀 셰자라고 부르기까지 했는데, 
툽뗀이 셰자의 이름이라는 것은 아빵 떼르뙨과 그의 측근만이 알고있던 것이었다..

그분이 아빵 떼르뙨의 환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다른 증거들이 있었다.. 
존자님이 탄생하시던 날에 누군가가 빠드마삼바바의 꾸찹(像)을 공양으로 올렸다.. 
이것은 상서로운 징조였고, 그 분이 아빵 떼르뙨의 환생자라는 또 하나의 암시로 여겨졌다… 
또 다른 연관성은 잠양 켄쩨 최끼 로되와 처음 만날 때, 
그로부터 롱첸닝틱 가르침 전체를 전수받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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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아빵 떼르뙨의 아들이 존자님을 찾아오자, 
아버지 ~ㅇ아왕 꿍가 린첸은 
아빵 떼르뙨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환생자를 모시고 가겠다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들은.. 
``대 떼르뙨께서는 사캬 가르침을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캬의 쾬 가문에 태어나셨으니, 
저는 그분을 데리고 가려는 의도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존자님이 태어나신지 몇주가 지났을 때, 그의 탄생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그때 그는 속명으로 ~ㅇ아왕 꿍가 텍첸 빨베르 틴레 쌤펠 왕기 갤뽀이라는 이름을 받으셨다..
1948年, 존자님의 나이 세살 때,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이모님이 그를 돌보아주셨다.. 
그는 매우 예의바른 아이였고, 특별한 자량의 징후들을 보여주었다.. 
어린 나이인데도 화공(火供)을 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조그마한 또르마를 만든다음 그 것을 던지는 의식을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기도와 예식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유년(幼年)

존자님은 1948년 세 살때에 처음으로 무상요가딴뜨라 관정과 다른 관정들을 받았다.. 
그의 생에서 처음으로 받는 핵심 관정이었고,  
쾬 가문의 전통에 따라 아버지가 그에게 수여한 것이었다...
그 중에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아홉본존 장수관정과 
바즈라낄라야 적노존(寂怒尊) 관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존자님은 그 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이 관정의 가피로 불사(佛事)를 이루는데 있어 중요한 몇가지 장애를 피할 수 있었다고 믿고있다..

1950년, 그이 나이 다섯살에 작은 누이 아양이 세상을 떠났다.. 
뒤이어 아버지께서도 세상을 떠나셨다..



초학(初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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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님은 라마 ~ㅇ알로 린포체로부터 
다수의 다른 관정과 함께 홍황색(紅黃色) 만주슈리(文殊) 관정을 받았다.. 
존자께서 처음 읽는 법을 배운 것은.. 매우 성스러운 만주슈리 상 앞에서였다..
그후, 읽기와 쓰기 기도 낭송법을 익혔고, 완벽해질 때까지 읽기를 계속하였다..

1950년 가을에는 ~ㅇ오르 에밤 최덴으로 길을 떠났고, 
그곳에서 근본스승이신 담빠린포체를 만나 공개적인 람데 가르침을 받았다..
그 분을 처음 본 순간, 커다란 신심이 안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그분이 과거생에도 스승이었고,  
이생에도 스승이고, 미래생에도 스승이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그의 나이 다섯살이었다.. 
1951년에, 존자의 나이 여섯살이었을 때, 매우 중요한 딴뜨라 경전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가 14대 달라이라마 존자를 처음으로 만난 것도 바로 그 해였다..  

1952년 초에, 
존자님을 차기 사캬 티진으로 지명하는 공식 성명서를 티벳정부 대리인이 낭독하였고.. 
간략한 예비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존자님이 구두 시험을 치른 것은 그 때였고, 경전을 성공적으로 염송하였다.. 
거기에서 헤바즈라딴뜨라를 포함한 여러 근본속전(根本續典)과 
부가적인 속전(續典)을 암송하였는데..모두 1천 페이지가 넘었다.. 
그의 암기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 때 그의 나이 일곱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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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님은 의식을 집전하고, 사캬사원의 새 주지 후보자를 가려내기 위한 예언을 하였고, 
그러한 방법으로 후임이 선택되었다..  
1953년에는 처음으로 무문관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장수(長壽) 무문관이었다...
같은 해에 존자는 처음으로 관정(灌頂)을 주셨다.. 
오래동안 머물러주시기를 바라는 존자의 간곡한 청에도 불구하고, 
음력 4월에 존자의 근본구루, ~ㅇ아왕 로되 센뻰 닝뽀 (담빠 린포체)께서 열반에 드셨다... 
좌탈하신 것이다.. 
다비(茶毘)를 하는 동안이나 다비 후에 많은 이적들이 나타났다...
그의 섭정은.. 그의 스승이신 담빠 린포체에 대한 헌신이 아주 지극하여.. 
전승조사(傳承祖師) 기도문을 외울 때면, 스승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열반하시고 수년이 지난 뒤에도 스승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눈물이 두 눈에서 흘렀다고 한다.. 
존자께서도 그분에 대한 헌신이 그와 같았다..

1953년 음력 7월에, 7개월 이상 계속되는 무문관(無門關)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동안 많은 다른 수행들을 하였고, 
스무개 정도의 다른 무문관 수행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존자님은 사캬의 대스승들이 명상의 세계에서 구축해 놓은 본보기를 따라가셨다. 
1954년에는 내승무(內僧舞) 외승무(外僧舞) 시험을 치루었다.. 
이와 연관된 다른 스물 다섯개의 의식을 주재하기 위해서였다..

같은해에, 고룸 법당에서 상서로운 징후들이 나타났다.. 
불상(佛像)이 동쪽으로 돌아가고, 무명실이 불상을 벽에 묶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이 기간동안 달라이라마 존자와 다른 대 라마들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7 ~ 8개월 뒤쯤에, 불상은 본래 방향으로 돌아갔고, 무명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인 1955년에 존자는 될마 포당에서 
그의 누이와 1천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바즈라끼라 관정(灌頂)을 주었고..
그 관정은 여러날 동안  계속되었다..


순례(巡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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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9월 초에 존자님은 달라이라마 존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차를 타고 라싸로 갔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 공양을 올리는 동안, 
남갤사원의 승려와 재가자, 고위 관직자들이 보는 앞에서 만달라  공양문을 지어 올렸는데.. 
대중들은 어린 존자님을 보고 그의 비범한 지식을 칭송하였다.. 
그 이후로 그의 지혜가 티벳 전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6년에는, 라싸에서 열린 대기원법회에 참석한 뒤에 라싸 남부로 순례를 떠났다.. 
많은 사캬사원을 방문하였고, 
그 지역에 있는 사원의 요청에 따라 관정을 수여하고 구전을 하고 가르침을 줌으로서, 
그 지방사람들과 법연(法緣)을 맺었다...

이 시기에 잠양 켄쩨 최끼 로되께서는 사캬를 방문하여 많은 관정을 주었다.. 
존자님은 인도로 순례를 떠났다.. 
그 곳에서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오랜 안거처인 사라스와띠, 열반하신 꾸시나가르, 
바라나시, 법륜을 처음 굴리신 사르나트의 녹야원, 성도지(成道地)인 보드가야 등을 들렀다.. 
그 때 존자님은 수행원과 함께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 수천가지 공양물을 올렸다..
그리고나서 부처님이 반야경을 설하셨던 라즈기르로 갔다.. 
그리고 나란다 대학을 들렀다.. 
이곳은 람데(道果)와 같은 사캬종의 가르침의 대원천인 비루빠께서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성지에서 그들은 기도를 하고 공양을 올렸다..


등좌(登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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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는 존자님이 법좌에 오르기 위한 준비로, 많은 예식들이 치뤄졌다..
예정된대로, 착좌식(着座式)은 1959년 음력 1월에 거행되었으니, 그때 존자님의 나이 14세였다..
그 해, 존자님은 티벳을 떠나 인도로 들어가셨다.. 
야밤에 달빛에 의지하여 히말라야를 넘었다.. 
씨킴의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에 이르기까지 꼬박 5일이 걸렸다..
시킴왕궁은 그를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1959년 말에는 잠양 켄쩨 최끼 로되께서 씨킴에서 열반에 드셨다.. 
열반하시던 날에는 그 지역이 빛으로 가득 찬 것 같았는데, 
그 빛은 해가 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외에도 상서로운 징후들이 많이 일어났다..


재건(再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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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씨킴을 떠나 다질링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굼 사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962년까지 3년간 승가를 일으켜 세웠다.. 
이때 인도와 중국사이에 국경을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1962년 말에 무소리로 이주를 하였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주최로, 제 1회 티벳불자회의가 1963년에 다람살라에서 열렸다.. 
위의 사진은 그때 당시에 찍은 것이다. 
회의에는 티벳불교 4대 종파의 종정(宗正)과 다른 뛰어난 스승들이 참석하였다.. 
사캬 티진 존자님의 법 지식과 자비로운 태도를 보고, 
거기 모인 분들이 탄복을 하고 경의를 표하였다..

존자님은 1964년 3월에 무소리에 첫번째 사캬 센터를 세웠다.. 
1972년에는 세드라(僧家大學)를 건립하였다.. 
전통적인 셰드라의 모범을 따라 교과과정을 짜고..1972년 12월에 그 시작을 알렸다.. 
1967년에는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람데를 전수하였다..
1968년에는 북부 인도 데라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뿌르왈라에 정착하였고 
그 이후로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에 존자님은 20세기 초종파 운동을 주도한 잠양 켄쩨 최끼 로되의 환생자를 확인하였다.. 1974년에는 여러 나라에서 해외법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도와 네팔 등지에 서른개가 넘는 사원을 세웠고, 
해외에 다양한 사캬센터들을 일으켰다..
데라둔 근처 뿌르왈라에는 사캬종의 총본산(總本山)이 있다.. 
그 곳에 있는 사캬센터에서는 불교에 관한 거의 모든것을 가르친다… 
이곳을 마치고나면, 사캬 셰드라(僧家大學)에 들어가 12년간 공부를 하며..
사캬 대표적인 무문관(無門關)은 네팔에 있다..



구법(求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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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근본스승인 담빠 린포체로부터  공개적인 비공개적인 람데(道果) 가르침을 받았다..
달라이라마 존자로부터 깔라차끄라(時輪) 딴뜨라와 다른 가르침을 받았고..
캉세르 샵둥 린포체로부터  성취총집(成就總集)을 받았다..
~ㅇ악로 린포체로부터는 사캬 전승의 구전(口傳)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잠양 켄쩨 최끼 로되로부터 사캬의 주요 전승과 닝마의 롱첸닝틱을 받았다…
데슝 린포체로부터는 사캬오조(釋迦五祖)의 가르침을 받았다..
자달 장춥 도르제로부터는  아빵 떼르뙨의 보장(寶藏) 가르침을 모두 전수 받았다..
그외에 율(律),논(論), 반야부 경전, 중관(中觀) 등을 배웠고, 
천문(天文),서예, 문법, 시, 수사학, 승무(僧舞),수인(手印) 등을 배웠다..




전수(傳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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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님이 전수하신 주요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람데(道果)는 사캬전승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자 핵심가르침이다..
이것은 공개적인 람데와 비공개적인 람데로 나뉜다..

존자님은 공개적인 람데 가르침을 1967년에 인도 사르나트에서 처음 가르키기 시작했으며,
1975년 라즈푸르를 거쳐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신다..
위의 사진은 1975년 라즈푸르에서 두번째로 람데 가르침을 주실 때 모습이다..

비공개 람데 가르침은 1980년에 인도 푸르왈라에서 처음 주셨고, 
1984년 프랑스, 1997년 호주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신다..

밀속총집(密續總集)은 잠양 켄쩨 왕뽀의 도움으로 로떼르 왕뽀께서 지으신 방대한 저술로…
싸르마와 닝마의 딴뜨라(續)에 관한 주요 관정이 300개 이상 들어있다..
대단히 많은 요소들이 요구되고, 광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전수이다..

성취총집(成就總集)은 600개 이상의 관정(灌頂)이 들어있다...
사캬파의 관정과 닝마파의 관정에 관한 것이다.. 
잠양 켄쩨 왕뽀와 로떼르 왕뽀의 공동 노력의 결과물이다..




불사(佛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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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캬 티진 존자님은 많은 가르침을 전수(傳授)하였다.. 
그의 넓은 학식과 감화력있는 설법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있고,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있다.. 
경승(經乘)과 속승(續乘)의 전승을 보존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하시고.. 
제자를 양성하고 불교철학의 기치를 높이 세우기 위해 
사원과 셰드라(僧家大學)과 무문관(無門關)을 건립하였다.. 
티벳불교 4대종파 전체의 가르침을 받은 덕택으로.. 
어느 전승에 속한 자라도.. 어느 전승의 가르침이라도 가르칠 수가 있으며..
초종파의 대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부처님의 법을 받드는 제자들을 돌보고,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에는 
예언을 하시거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거나,  
법본을 준비하거나, 가피를 하거나 수행을 하신다..

사캬 티진 존자님은 부처님의 가르침 전부를 손에 들고,  세상에 널리 전하고 있고, 
신심있는 자들에게는 지혜와 자비의 원천이 되고 있다.. 
존자님은 지금 인도 데라둔 라즈푸르에 있는 돌마 포당에 주석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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