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5, 2014
경승의 믿음과 속승의 지견...
수미산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산 자체에 관한 것이며... 예상 가능한 위험..
그것을 즐길수 있는 법...정상에 오르는 의미...정상에 오르는 방법...등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상에 오르는 의미...정상에 오르는 방법..이라고 가정을 해볼께요...
그래서 여러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다들 내놓으라는 전문가들이니...
산 자체에 관한 부분이라든가...정상에 오르는 의미는...
다들 거의 비슷하게 얘기했는데...
정상에 오르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 달랐다고 해볼께요...
수미산 정상에는...
인도인들이 말하는 차끄라삼바라...
티벳인들이 말하는 코로돔빠가 상주하고 계십니다...
정토만달라의 중심에 있는 우주수(수미산) 꼭대기에는..
그 정토 만달라의 주인이신 코로돔빠가 계시는 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전문가에게 말했어요...
저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매우 수승한 덕이있다 들었습니다...
어떻게하면 저 꼭대기에 이르겠습니까..?
참으로 기특하게 생각하면서...한사람은...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나의 서원의 짚신을 줄터이니...
네 믿음의 발을 여기에 끼우고...저 가파른 암벽을 붙잡고 걸어서 올라가라...
이 길은 너의 의지에 달려있고.. 길이 매우 멀고 험하니 이를 악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라가면서...방향과 목적을 잃고 곁길로 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꼭대기..꼭대기..꼭대기.. 꼭대기..꼭대기를 일념으로 외우라..``
다른 한 사람은..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북편 비밀의 계곡에 가면...금시조가 살고 있다...
그 금시조를 찾아...네 지견의 힘으로 저 가피의 등에 올라타라....
그러면..순식간에 정상에 이르게 될것이다...
어디로 가자고 하지않아도
금시조는 반드시.. 오류없이 재빠르게 정상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둥지가 정상에 있고...
한번도 그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에서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
서원의 짚신을 신을 것이냐...
가피의 금시조에 올라탈 것이냐는 자신의 결정입니다...
그러나... 같은 것을 의미하는 다른 두가지를 각자 준비해야 하겠죠...
하나는 믿음이고... 하나는 지견입니다..
같은 것을 의미하는 다른 두가지에 대해 설명해드립니다...
둘은 뿌리에서 하나입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소멸하고.. 릭빠가 출현했을 때..
마음의 틈 사이로 보여주는 릭빠의 여운입니다...
릭빠의 출현빈도는 점점 강해질겁니다...
그에 비해.. 내속승에서 말하는 지견이란 릭빠의 완전한 자각입니다..
정도의 차이일뿐이지...
둘 다..사물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자각하는 것을..불성과 관련짓기도 합니다..
경승의 믿음과 속승의 지견은..이 불성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갈립니다..
사물의 자성을 보더라도 눈이 흐리면..
보는 자성과 부처사이에 아주아주 거리가 멀다고 여깁니다...
그래서...서원의 짚신을 신고...저 멀리있는 아미타를 향해 걸어갑니다...
릭빠의 완전한 자각에서 보면...아미타는 멀리있지 않습니다...
사물의 자성은 본래청정하여..때가 묻지않았으며...
사물의 자성이 곧 아미타이니...가야할 길도 없고.. 짚신도 필요없습니다..
이처럼... 자성을 보는 눈의 깊이에 따라...
경승과 속승의 견해가 갈리고...
그 견해에 따라...취하는 방편도 달라집니다..
정토삼부경의 방편은 경승에 있지만..
정토삼부경의 수승한 방편은... 속승에 있다 할수 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석가모니로서 나타나기도 하고...구루린포체로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짚신을 주었고...어떤 자에게는 금시조를 주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두 사람은 두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미타부처님의 양면성입니다...
Sunday, April 13, 2014
The Cello Song --The Piano Guys
물론 나는 이번 생에 한번도 첼로를 만져본 적이 없다...
첼로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고..소리가 어떤지도 몰랐다..
생긴것을 따져보고는 그것이 첼로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이렇게 한번씩 듣는다...
첼로를 연주하는 꿈속의 나는.. 현을 만지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소위 한가닥하는 쏨씨였다..
어렵쇼~~
어쩌면 나는 어느 전생에..
첼로라는 악기를 다루는 쟁이였는지도 모른다..
가야할 세상은 따로 없습니다..
1,티벳에는 밀교.. 정토왕생의 방편이 있다...
반드시 정토왕생하려면...
다른 속승의 방편과 포와 중 어느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
--->>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라면...누구보다도 법등님이 잘 아실것입니다..
정토수행과 관련하여..Sutra Tantra 양 갈래에서 고심하신줄로 압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방편이 있으니.. 둘 다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법등님은...
Tantra에서 길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시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법등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겠지만..
생각하시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Sutra.. Tantra 둘 다..정토에 날 수 있는 방편을 제시하고 있고....
경승(經乘)보다는...무상유가속 혹은 내속승의 방편이 수승하다는 것을 아시겠지만...
과연 나는 내속승을 수행할만한 견해를 갖추고있는가를 먼저 점검해야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경승의 방편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어울리는 견해를 갖추지 않는다면.. 선택이 욕심일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는...경승이냐.. 혹은 속승이냐를 떠나서...
내가 선택하게 될 전승이... 살아있는 전승의 맥을 가지고있느냐 ...
혹은 전승의 맥이 강력하냐.. 약하냐를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세번째는 선택과 집중입니다...
어느곳이 되었든..갈등하지 마시고 발을 들여놓으십시오...
안에서 우러나오는 바른 지견에 안착하십시오..
그 지견이.. 확신을 가지고 수행을 견인할 것입니다...
망상분별하는 마음이 강하다면.. 수행은 어렵습니다..
전승의 법맥이 살아있는 곳을 선택하고..
공성의 지견을 가지고 있고..
진심으로..안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을가지고 전승의 법을 따른다면..
어느 전승.. 어느 가르침을 가지고 있던 반드시 정토에 이릅니다...
방편이 무엇인가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위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모든 경승,속승의 방편이 다 통하며...
내속승의 방편을 선택한다면...가장 빠르고 확실할겁니다..
방편이 수승한 이유는 견해가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2,방해와 예기치않음..착란..이런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고 정토에 가겠는가..?
혹은 어떻게 정토를 인식하겠는가..?
반드시 그 곳으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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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공성의 지견을 갖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의 분별로보느냐.. 릭빠의 자각으로보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의 연기적 실체를 이해하면...세상이 정토입니다...
연기적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예토입니다..
릭빠의 자각이 있다면...
어떤것을 하든 안하든...모든 길이 정토로 통해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본질적으로 정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념을 다스리십시오..
사념 사이로 릭빠가 나타나도록 허용하십시오..
사념이 가라않고.. 릭빠가 지배하면..
어떤 승의 마차를 타든.. 어느 가르침을 따르든..
정토로 완전히 열려있음을 알 것입니다..
여기..여기..여기..여기..여기..모두가 정토입니다..
릭빠가 나타나지 않으면..
삶의 모든 순간이 고통이고.. 수행도 고통의 생산자입니다..
그러므로..마음의 분별이 정토를 가리는 미혹의 장막이고..
그와같은 미혹된 착각을 예토라 할 뿐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견해에 안주하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그냥 가라앉지 않고..견해는 거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별해탈계 등을 잘 지켜야 합니다..
계는 6바라밀에서 보시 지계 인욕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두고 복덕자량을 쌓는다라고 할겁니다...
별해탈계는 놓아버림의 메카니즘입니다..
꼭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는 집착이 떨어져나가니..
갈등이 사라지고..격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갈등이 사라지고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니..
사념이 줄어들고..릭빠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릭빠가나타나니..사물을 있는그대로 잘 보게됩니다..
마음은 넓게 개방이 되고..적절히 행동하는 법을 압니다..
이와같이 지혜자량이 쌓입니다..
이와같다면... 가야할 세상은 따로 없습니다..
예토로 보던 모든 것은 정토로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살아서 이런 것들이 이해되지않는다면.. 죽어서도 정토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좋은 정토 수행법을 고민하는것보다는...
자량을 쌓고.. 견해를 확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조건이 성숙되어있다면.. 어느 수행법을 선택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자량을 쌓으시고..
가능하면 셰드라에 가서 공부해보십시오..
3,포와의 수행만으로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포와수행만으로 정말 정토로 향할수 있을까..?
바르도의 혼돈에서 벗어나 정토를 인식할수있을까..?
한편..이또한 무상유가부속에 속하니..완전한 깨달음에 이를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로6법 중 하나만 닦아도 성불할수 있다고 하는데...과연 포와는 어떨까?
--->>
포와수행으로 정토에 못날수도 있습니다..
포와수행으로 정토에 날수도 있습니다..
포와수행으로 더 높은 깨달음에 이를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견해와 방편의 적용 수준에 달려있습니다..
무상유가부속(無上瑜伽部續)에 속한다 해서..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것은 아닙니다..
생기차제..원만차제..대원만차제 라고하는 세가지 메카니즘을 수용할 때..
완전한 깨달음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6법중 어느 하나를 닦는다하더라도...
마하무드라(大手印)수행과 결합하지 않는다면...안될 것입니다..
뚬모는 지배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것들은 부수적인 가치들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방편으로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은 다소 무리입니다...
마하무드라를 수행하고..뚬모를 중심으로 하고 다른 방편들을 보조하면 될 것입니다..
마하무드라를 성취하였고...뚬모를 수행하고 있다면..
거의 성불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만큼 뚬모는 지배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포와는 나로6법 중..어느 한부분과 겹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그보다는 하위 개념의 수행입니다..
4,꾼상라메셰룽은..예비수행에서 포와를 제시한다...
--->>
정확히 말하면... 닝마전승의 독특한 선택입니다...
닝마전승의 6불공가행 안에는 이 부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포와 전체가 아닙니다.. 포와의 가치를 살렸을 뿐입니다..
불공가행(예비수행)에 집중하십시오...
가행이 어려운 것은...
자량이 쌓이지 않아서...
계가 청정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선정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선정력이 없다면..
오히려 공가행을 하면서..
삶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나가고.. 선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마저도 잘되지 않는다면...
업이 두터우므로..
삶을 통해 좀 더 단련되어야 합니다...
Saturday, April 12, 2014
경승(Sutrayana)과 속승(Tantrayana)을 분간하다..
유별나게..질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략 간추려보니..열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성실하게 답하려면 몇시간 가지고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능한한 말을 줄이려합니다...
질문을 주시는 분은..다른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시고자 하시며...
이미 정해진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곳이... 어떤 것을 공감하고자 하는 카페이므로..
저는 예의를 차려 하나하나 답을 할겁니다...
그러나 제가 한가지 부탁드리는 것은...
저의 이 답변을 논쟁거리로 삼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기꺼이 돕기위해서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애초부터 그리려던 그림이 있으므로...
지체없이 그려나갔으면 하거든요...
각 질문에는 번호가 있고...
답은 화살표 (--->>) 아래에 이어집니다...
1,불교의 모든 방편은 경전에 근거하고 의지한다...
Tantra는 무슨 경전에 의지하고...무엇을 근거로 거기에 의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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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모든 방편이 경전(經典)에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속(Tantra)은 경전(經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속전(續典)에 의지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소승이 볼 때..
부처님의 원음에 의지하지않는 대승 경전은..
애비도 없는 호로자식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그러할 때... 어떻게 대승 경전의 정당성을 지지하시겠습니까..?
경(經 Sutra)과 속(續 Tantra)은..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가지고 있는 그 견해에 근거하고 의지합니다..
견해가 다르니... 명상과 수행의 방편이 다르고.. 행위 메카니즘도 다릅니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름이 필요없다면... 성문 연각 보살의 경계 또한 없었을겁니다...
경과 속의 다름도 그러합니다..
경(經)에 의지하는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은.. 경(經)의 견해에 의지하고..
속(續)에 속하는 두가지 속승(續乘)은.. 속(續)의 견해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성문 연각 보살의 견해가 다르듯이...
외속승.. 내속승의 세부적인 견해가 모두 다릅니다...
두가지 속승(續乘)이란...
소작속(
마하요가.. 아누요가.. 아띠요가를 포함한 내속승(內續乘)을 말합니다..
내속승(內續乘)은 무상유가속(無上瑜伽續)이라는 단어로 함축되기도 합니다...
소승..대승..진언승이 서로 견해가 다르니...수행방편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Tantra는 속전(續典)에 의지하고..속전(續典)의 견해에 근거합니다..
경에 의지하는 세가지 승은 각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경들이 있고..
종(宗)마다..종의 견해를 지지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속승(續乘)의 범위안에 있는 종(宗)은...
자기견해를 대변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아니 소의속전(所依續典)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화엄종의 화엄경.. 정토종의 정토삼부경처럼...
티벳불교 닝마종은 세가지 다른 승(乘)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있으며..
세가지 다른 승(乘)은 각자 다른 소의속전(所依續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하요가는..하나의 승(乘)으로서..구햐가르바딴뜨라 속전(續典)을 근거로 하고..
아누요가는..또 하나의 승(乘)으로서..네가지 소의속전(所依續典)을 가지고 있고..
그를 보조하는 여섯가지 속전(續典)이 있습니다...
아띠요가는 족첸으로서...닝마의 궁극적인 승(乘)에 해당하며...
그 토대로는.. 족첸의 6백 4십만 근본게송이 있으며..
견해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심식부.. 공행부.. 요결부로 나뉘므로...
각각의 부는 소의속전(所依續典)이 다릅니다...
심식부의 소의속전(所依續典)은 꾼제갤뽀 속전(續典)이고..
공행부의 소의속전(所依續典)은 롱첸랍잠 갤뽀 속전(續典)이며..
요결부의 소의속전(所依續典)은 요결부17속전(續典)중..다딸귀 속전(續典)입니다..
닝마종 중에서도 롱첸닝틱의 전승은..
뀐뚜 상뽀 예셰 롱끼 귀.. 속전(續典)을 소의속전(所依續典)으로 하고..
귀 치마..속전(續典)을 부속전(附續典)으로 하고..
뀐뚜 상뾔 공 냠..을 석속(釋續)으로 하며..
귀 치마..속전(續典)을 부속전(附續典)으로 하고..
뀐뚜 상뾔 공 냠..을 석속(釋續)으로 하며..
네숨 센제, 네룩 도르제 찌강..을 요결(要訣)로 하고..
예셰 라마..를 요결(要訣)에 대한 지침(指針)으로 삼고 있습니다...
같은 내속승(內續乘)에 속하는 티벳의 다른 전승은..
자신들만의 소의속전(所依續典)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딴뜨라를 지지하는 전승은...
비밀집회딴뜨라 등을 소의속전(所依續典)으로 하고..
모딴뜨라를 지지하는 전승은...
헤바즈라딴뜨라와 차끄라삼바라딴뜨라 등을 소의속전(所依續典)으로 할것이며..
불이딴뜨라를 지지하는 전승은...
깔라차끄라딴뜨라를 소의속전(所依續典)으로 할것입니다..
아니면..자체의 사상이 있는가..?
--->>
질문의 방향이 조금 달라서.. 따로 분리하였습니다..
질문을 주신분은...
Tantra 자체가 대승의 철학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중관을 토대로 쌓아올린 것이라 생각하시나 봅니다...
정확하게 중관의 귀류논증이라고 지적하실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던것처럼... ,Tantra의 각 승(乘)은...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속전(續典)을 가지고 있으며...
티벳불교는...실패할수도 있었던 두차례 역사적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지지기반의 아랫쪽을 보강합니다...
그래서 마하무드라전승이나..족첸의 전승은..
마하무드라나 족첸이 지적하는 견해에 오류없이 쉽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대승의 철학을 먼저 공부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티벳의 셰드라(講院)입니다...
중관에서는 귀류논증을 지지하는 부분을...유가행에서는 미륵오론을 공부합니다...
귀류논증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중관에서는 나가르쥬나와 찬드라끼ㄹ띠.. 산띠데바의 논서를 공부합니다..
미륵오론은...대승장엄,현관장엄,중변분별,법법성분별..
구경일승보성론까지 모두 공부합니다..
중관의 귀류논증과 유가행의 미륵오론이..
마하요가,아누요가,아띠요가를 포함한 내속승(內續乘)의 견해에 계합하기 때문입니다..
경으로 얘기하자면..
주로 부처님의 3전법륜에 해당하는.. 여래장경..승만경..금광명경..화엄경..
열반경..대보적경.. 능가경 등이 배후에서 이를 지지합니다..
이렇게..부처님의 2전법륜 3전법륜은 내속승(內續乘)의 견해를 지지합니다..
수행마저도...
소승과 대승의 핵심이 먼저 수행이 되도록 설계해놓았습니다...
그것이 티벳불교의 공가행(共加行)과 불공가행(不共加行)입니다...
이것은 5도 가운데 자량도를 닦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면..
내속승(內續乘)의 견해를 전수해주며...
오류없이 내속승(內續乘)의 수행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소승은..
대승의 경전을 보고..
바탕도 없고..애비도없는 호로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가르쥬나(龍樹)는 날란다대학에서 용국에서 온 자들을 따라가서..
10만송반야경,화엄경 등을 포함한 여러 경전들을 구해옵니다..
질문을 하신분이라면...이 대승경전의 정체성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아쌍가(無着)는 색구경천에가서.. 미륵으로부터 심오한 법문을 듣고 돌아옵니다..
그리고나서 두개의 장엄과 두개의 분별과 하나의 론을 짓습니다..
이렇게해서 생긴것이 미륵오론입니다..
누군가가 색구경천에서 들었다는 이 법문의 정체성을..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질문하신 분이..이것을 현실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다르마의 토대라고 생각하시는 이 대승의 두 철학을..저 역시 외면해도 될까요?
3,석가모니부처님 열반후 12년 뒤에 연화생이 화생하였다는 티벳의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근거로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12년뒤 대성인의 출세는 금시초문인데...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
질문을 주신분이..용수보살의 예언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경전,속전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인물들이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연화생은 그러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아래 대목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반열반경에 묘사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세상을 떠나시겠다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고..아난다는 매우 슬퍼합니다.
이때 부처님은 아난다에게..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여기에서는 8년뒤라 하지만...다른 경전에서는 12년 뒤라고도 합니다..
연화생이라는 대성인의 출세는.. 열 아홉가지 경전,속전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물은 변하고...유정들에게 죽음은 필연적이니..
내가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그러나 울지마라...
내가 떠난 뒤 8년이 지나면...
우ㄹ겐국 서북방 다나꼬샤 호수에 있는 연꽃 몽우리에서..
나보다도 더 현명하고...더 큰 힘을 갖춘 자가 태어나리라...
그는 `빼드마까라(蓮華生)`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요..
사물의 궁극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최상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중생들을 크게 이익되게 하리라..``
`빼드마까라`.. 연화생이 화생을 한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한 직후이고..
티벳으로 들어간것은...그로부터 약 1,300년이 지난 후입니다..
같은 시기에..여기에서 산따락시따..비말라미뜨라 등과 한곳에서 조우를 하고..
티벳불교의 역사에 지대한 공을 세웁니다..
띠송데짼 왕이 재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족첸(아띠요가)의 종조(宗祖)인 가랍도르제가 출세를 하고..
마하요가 아누요가의 종조(宗祖)인 바즈라빠니(금강수)가 출세합니다..
가랍도르제의 족첸(아띠요가)은 만주시리미뜨라가 이었고..
금강수의 마하요가 아누요가는 비말라끼르띠(유마거사)가 이었습니다..
연화생은 이들과 나란히 같이하면서...
불교역사에서..내속승(內續乘)이라는 새로운 옷감을 짜나갑니다..
연화생이 티벳역사에 등장한것은 아주 나중의 일입니다...
다른 기회에.. 두고두고 이부분은 설명할 부분일겁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4,연화생 대사는 Tantra를 전수하셨는가..?
그가 Tantra를 전수하였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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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불교에서는 전승의 형태를 초월해서..
연화생(구루린포체)은 모든 수행자의 귀의처입니다..
그는 닝마종에서 말하는 마하요가.. 아누요가.. 아띠요가를 전수하셨습니다..
세가지 전승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성취자들이 나왔고..
성취자들의 깨달음이 그의 존재와 가르침을 분명하게 증명합니다..
....................
특히 롱첸닝틱을 포함한 몇가지 닝틱전승이..
그의 존재와 가르침을 가장 잘 증명합니다..
그리고..롱첸랍잠빠나 직메링빠와 같은 조사들이 그의 가르침을 증명합니다..
5, 나는 가르침을 가지고..분별을 하고 위아래를 논하는 것이 싫다...
화두선은 어떻고 염불선은 어떻다고들 한다...
Tantra와 염불선의 상하를 논하는 것은..
불교다르마의 입장에서 그렇게 주장할만한 근거가 있는가..?
--->>
화두선과 염불선을 가지고 위아래를 논하는 것은.. 안된일입니다..
한국불교의 고질적인 병은.. 지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방편을 버리고.. 천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위대해지지 못한 것은.. 방편을 버린 불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머리만 있고.. 다리가 없다면..목표지점으로 갈수가 없습니다...
본디.. 달마조사께서 선(禪)을 전수하셨을 때는..
지혜와 방편이 구족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6조 혜능 이후..
지혜를 따르는 전승과 방편을 따르는 전승으로 갈라졌습니다..
그 이후.. 선(禪)이 가진 본래의 고귀함이 사라졌습니다..
본래의 고귀함이 살아있을 때에는...
마치.. 닝마종의 마하 아누요가와 족첸이 상생하고 있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禪)은 대승의 법이 아니라...금강승의 내속승과 같았죠..
지금은.. 견해와 방편 모두.. 대승의 것으로 떨어져있습니다...
대승의 위빠사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염불선을 아래로 쳐다볼 수 없습니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염불선은 속승(續乘)과 비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실상염불(實相念佛)이라고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속승Tantrayana(續乘)과 염불선의 상하를 논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번의 글에서..
Sutra와 Tantra의 개념적인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Sutra에 해당되는 것은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이며..
성문과 연각을 소승이라하고.. 보살승을 대승이라한다고 하였습니다..
Tantra에 해당되는 것은 세가지 외속승과 세가지 내속승이라 했습니다..
모든 붓다다르마를 가장 간편하게 나누면.. Sutra와 Tantra가 될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은.. 내속승에 속하는 마하요가 아누요가 아띠요가입니다..
아마도 질문하신 분이 공부하시는 것은..
화엄경에 속한것이거나..정토삼부경에 속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Sutra중에서 보살승에 속하시는 셈입니다...
화엄경이 내속승(內續乘)의 속전(續典)과 견해는 같이하지만..
방편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Sutra와 Tantra를 가르는 이유입니다..
닝마종에서.. 모든 불법을 9부승으로 나눈것은..
각 승(乘)마다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고...
특히 견해에 접근해가는 방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화엄경의 Sutra와 내속승의 Tantra를 나눈것은..
견해가 다르고..특히 실천의 메카니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9부승은 Sutra의 견해와 방편을 Tantra보다 아래로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대승에서 부처님의 3전법륜에 속하는 경전을 토대로...
실천할수 있는 방편이 주어졌더라면..
Sutra와 Tantra의 근본적인 차이는 거의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3전법륜이 견해가 적용된 방편들은 Tantra안에 있습니다...
비록.. 화엄경이나 해심밀경 등이 경전에 속한 것이기는 하나...
보살승이 추구하는 방편보다는.. 속승의 방편을 비추어주니..
Sutra에 속하지만... 그 격이 9부승에서 보살승에 속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모든 다르마는 이 두가지 안에 포함됩니다...
Sutra아니면 Tantra인것이죠..
화염경이 Tantra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공부하는 것과 같은 Tantra에 속하신 셈이고..
아니라면..Sutra에 속하신 것입니다..
견해를 탓하지 마시고...수행방편을 탓하십시오..
화엄경은 내속승의 견해를 지지하죠...
그러나 화엄의 방편을 수행하시고자 한다면..
마하요가,아누요가,아띠요가 안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6,Sutra의 대승은 성불을 하려면 3아승지겁이 걸린다 하고..
Tantra는 즉신성불이라하는데...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
이 모든 것을 가르는 것은 색신의 방편입니다..
불법은 지혜와 방편을 수행합니다..
지혜를 성취함에 있어서는..Sutra나 Tantra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방편의 법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는.. 법신을 깨달아 보살이 되는 것이고..
방편은.. 두가지 색신을 성취하여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Tantra가 부처를 이루는데 빠르다는 것은..
두 가지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이 수승하다는 것입니다..
색신의 방편이 서로 다르므로...
대승의 6바라밀 방편으로는 3아승지겁이 걸리지만...
외속승의 관상으로는 16생이나 그 이하가 걸리고..
내속승의 기,맥,명점을 수행한다면..즉신성불할 수도 있습니다...
즉신성불이란 그 몸을 가지고 성불한다는 말이니..한생 안에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Tantra가 즉신성불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내속승만이 즉신성불이 가능합니다..
내속승은 마하요가,아누요가, 아띠요가를 말합니다..
내속승으로 즉신성불이 가능하다는 것은...
마하요가..아누요가만을 수행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하요가의 생기차제와 아누요가의 원만차제를 수행한 뒤에...
아띠요가(족첸)의 요결을 성취해야지만 가능합니다..
요결이란 떽최의 원시청정과 뙤갤의 정광명을 말합니다..
닝마의 내속승은..다른 전승에서 무상유가딴뜨라를 의미하므로..
모딴뜨라나 부딴뜨라..혹은 불이딴뜨라의 전승을 따라
생기차제와 원만차제를 수행하고 나서..
족첸이 아닌 다른요결을 수행하는것일수도 있습니다..
7,법화경은 염불을하거나 관상을 하면..즉신성불한다고 말합니다..
막바로 성불한다는데..그렇다면...이게 더 수승한 것이 아닙니까..?
--->>
아닙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아닙니다..
말의 의미를 잘못아셨습니다..
즉신성불이란... 이 몸을 가지고 성불을 한다는 뜻이니..
앞서 말한것처럼.. 한생 안에 성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상하자마자.. 그렇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즉신성불의 견해와 그에 걸맞는 수승한 방편을 지닌곳은 내속승입니다..
법화경의 말은 이론적 토대는 되지만...
대승안에 이것을 실현시킬수 있는 방편이 없으므로 안됩니다...
실제로...
여래장경이나 화엄경 등의 부처님의 3전법륜은 족첸의 견해에 근접해있지만...
그 견해에 근거한 수승한 방편이 대승안에는 없습니다..
오히려..3전법륜에 근거한 수행법은 내속승 안에 나타납니다...
부처님의 최상의 법문인 3전법륜...
그것과 일치하는 실천법은 내속승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Tantra를 설하지 않으신 것도 아닙니다..
내속승이 아니라...외속승에 해당되는 것을 주로 설하셨습니다..
물론.. 내속승에 속하는 깔라차끄라딴뜨라를 설하기도 하셨지만요..
적어도 깔라차끄라딴뜨라를 보면..
3전법륜의 견해를 적용한 방편이 Tantra속에 나타나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경전의 말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염불을 하고 관상만 해도 즉신성불한다는 것은...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는 지견을 갖추는 것입니다..
마음을 끄고..릭빠의 눈을 뜬 상태에서...
사물의 청정한 본성을 자각하면서 염불을하거나 관상을한다면..
바른 출발을 한 것입니다..
실상염불(實相念佛)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한다면... 즉신성불은 못해도...16생안에는 성불할것입니다..
두번째는 수승한 방편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승한 방편이 보살승(大乘) 안에는 없으므로...
사물의 본성을 자각하는 릭빠의 눈을 뜬 상태에서..
내속승(內續乘)에 입문하여.. 수승한 방편을 얻어야할것입니다...
그러면...법화경의 약속대로 즉신성불할수 있습니다..
수승한 방편을 만나지 못한다면..
색신의 성취는 요원한 것이니...
외속승의 평범한 관상처럼 16생이 걸릴수도 있고..
보살승의 6바라밀처럼 3아승지겁이 걸릴수도 있습니다...
인도의 주력이나.. 샥티&시바 사상을 끌어들인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
불교는 용수보살의 중관사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수보살의 중관과 공감은 합니다..
그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자생력이 없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빌려온 것으로 보시는군요...
Tantra속승(續乘) 자체만의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중관의 견해는.. 족첸의 견해에 미치지 못합니다..
다만.. 중관의 견해 중에서 귀류논증(歸謬論證)을 선택하고...
귀류논증 중에서도 타공설(他空說)을 선택해야..족첸의 견해와 가까워집니다..
미륵오론은..중관의 귀류논증 가운데..타공설과 일치합니다..
내속승의 모든 속전은 귀류논증의 타공설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전중에서 귀류논증 타공설(他空說)을 지지하는 것은..
부처님의 3전법륜에 속하는 10여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앞에서도 열거한 대로..
여래장경, 승만경, 화엄경, 금광명경, 대보적경,능가경,열반경 등입니다..
닝마종이나 조낭종 등에서는..이와같은 경전을 요의경전(了義經典)이라 합니다..
자립논증은 연기(緣起)의 객체가 존재하므로..윤회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힌두 사상이 연기(緣起)의 법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립논증(自立論證)의 경우처럼 오류가 있고..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중관을 티벳에서 공부하는 것은...
족첸과 같은 수승한 견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합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니까요..
족첸의 법을 함부로 줄 수 없으므로...
중관을 통해 견해를 확립하는 것을 보고..
가행을 통해.. 소승 대승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을 보고..
족첸의 견해와 방편(관정,구전,지침)을 전수합니다..
12년의 셰드라(講院) 과정은 Tantra속승(續乘)의 견해에 다리를 놓아줍니다..
세드라는 머리를 괴롭히는 과정이 아닙니다..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량이 쌓이고.. 장애가 적은 자가..
타고난 명징한 마음을 가지고..
언어라는 도구로 사물의 본질에 관통하고자 함으로서..
자성이 청정한 본질(空性)을 알아차리려는 것입니다..
인도불교나 티벳불교는 교학과 수행이 둘이 아닙니다...
교학을 통해 견해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
불교는 인도사상의 답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잿더미에서 일어나는 금시조(金翅鳥)의 비상과 같습니다..
과거 사상의 잿더미는..
금시조가 일어나는 바탕이 아니며..
금시조의 비상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며...
자생의 힘을 잃어버린 잿더미에서 변형된 것도 아닙니다..
인도의 전승과는 뿌리가 다릅니다..
불교는 결코 베다에 뿌리를 두고있지 않으며...
베다에서 나타난 6파철학에 의존하지 않으며..
아트만(我)의 미혹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Sutra도 그러하고... Tantra도 그러합니다..
힌두철학은..불이법이라는 아드바이타 베탄타마저도..모순에 빠져있습니다..
불교 혹은 티벳불교는 힌두사상에서 갈라지지 않았고..
힌두사상에서 변형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착시현상입니다..
학자처럼..사실을 잘 알지못하나 어떤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나...
세심하지 못한자의 망언과 같은 것입니다...
인도의 주력이나.. 샥티&시바에 근거한 딴뜨라는..
과거불이 가르친 다르마의 흔적으로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현재불의 가르침은..과거불의 가르침이 필연적으로 쇠락하기에 나타나며...
현재불의 가르침은.. Sutra와 Tantra의 두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불교의 Tantra를 힌두철학의 답습으로 보신다면...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시는 겁니다...
힌두 Tantra와 가장 닮아있는 부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속전續典을 소의로 하는..외속승(外續乘)이기 때문입니다..
...................
가르침은 하늘에서 나는 것이지..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땅은 그저.. 하늘에서 난 것을 받아서 기릅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시들고 사라게 할 뿐입니다...
땅은 한 순간 화려하지만...결국 무기력해집니다...
그때마다.. 하늘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새로운 다르마를 내보냅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불은 현재불로 이어지고.. 현재불은 미래불을 예약합니다..
이것이 알아야 할 핵심입니다..
9,칠채화신(七彩化身).. 혹은 홍광신(虹光身)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신라시대의 김가기도..선도를 수행하고 육신 그대로 하늘로 사라졌다...
내가 아는 어떤분도 그러하였다..
연구가 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다르마를 수행한다면..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르마를 따라가야 할 가치는 있습니다...
홍광신(虹光身)이라는 주제를 통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법신성취와 색신성취의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사례는 어떤식으로 구분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홍광신(자뤼)과 광명신(외꾸)로 구분하였습니다..
법신을 성취한 자는 흔하디 흔합니다...
그것은..사물의 청정한 본성(空性)을 보고..보살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아직 색신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칠채화신과 같은 것을 보여줄수도 있습니다...
닝마종에서는 지난 200년 동안 칠채화신을 성취한 사례가 수십만건입니다..
다른 곳보다는 훨씬 많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사실 자체를 자랑할 일은 아니죠...
법신을 성취하는 자는 많으나..
색신을 성취하고 정광명신을 드러내는 자는 아주아주 드뭅니다..
그것은 3신을 성취하고..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몸에서 정광명신을 성취하는 법이 있다면... 자랑해도 됩니다...
어디에나 있는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신은 보살과 부처의 공통분모이고...
색신의 성취 정도는 보살의 단계에서 나타나고..
색신의 완전한 성취는 부처에게서만 나타납니다..
색신 성취의 방편이... Sutra와 Tantra를 가릅니다..
Tantra에서는 색신이 드라마틱하게 빨리 성취됩니다..
Tantra의 존재 이유는..
색신을 성취하는 수승한 방편에 있는 것입니다..
대승 또한 방편이 있지만...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이 수승하지는 않기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립니다..
이 차이를 유념해주십시오...
10,인도불교와 티벳불교의 차이점을 알고싶습니다..
어떻게 갈라지고 변형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간단할수 없는 부분이지만...간단하게 해봅니다..
티벳의 띠송데짼 왕은
설국에...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사업을 벌입니다..
붓다佛 다르마法 상가僧를 그곳으로 들여오기 위해서였죠...
그는 인도에서..학문과 성취 양면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들을 죄다 불러들입니다..
거기에는... 비말라미뜨라와 빠드마삼바바..산따락시따 같은 자들도 있었는데...
한마디로... 인도불교가 뿌리채 티벳으로 건너간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말라미뜨라가 티벳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마치 인간이 윤회를 하듯이...
인도의 영혼은 몸을 빠져나가... 설국 티벳에 깃들었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티벳으로 건너가기 전에...
날란다 대학은...인도불교의 산실이었습니다..
소위.. 중관과 유가행이라는 양대철학이 발생했습니다...
낳았을뿐 아니라.. 기르고 성숙시켰습니다..
그들은 경,론을 사유하고... 방편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학승이지만...대부분 대성취자들이기도 했습니다...
날란다는.. 인도불교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날란다와 비끄라마실라는 이처럼 인도의 대승불교를 매우 비범하게 장엄했습니다..
인도불교가 티벳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이러한 날란다의 정신이 옮겨간것을 의미합니다...
옮겨간 두가지 핵심을 얘기해보렵니다...
첫번째..날란다에는 쟁론이라고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르마를 성숙시키는 도구였죠...
그것은 티벳으로 넘어가.. 티벳의 셰드라(講院) 문화를 만들어냈어요...
대단히 가치있는 문화입니다..
두번째..중관과 유가행이라는 대승의 강력한 무기가 건너갑니다..
티벳은 이 두가지 무기를 절차탁마합니다..
인도에서 중관은 자립논증과 귀류논증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티벳은 귀류논증을 받아들였고...
내속승과의 상호작용속에서.. 귀류논증은 자공견 타공견으로 갈리고...
조낭종의 깔라차끄라와 닝마의 족첸은.. 타공견을 중관의 최상의 견해로 인정합니다..
중관은...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2전법륜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타공견을 지지하는 순간... 부처님의 3전법륜과 맥을 같이합니다..
인도의 미륵오론은..대승장엄.. 현관장엄 중변분별.. 세가지만을 공부하였으나..
티벳의 내속승과 상호작용하면서...
미륵오론의 나머지.. 법법성분별과 구경일승보성론의 가치가 떠오릅니다..
법법성분별과 구경일승보성론은 따로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져있었으나...
마하무드라의 전승조사인 마이뜨리빠께서 발견하신 뒤로..다른 전승경로를 거치게됩니다...
인도의 미륵삼론은.. 티벳의 미륵오론이 된 셈이지요...
한때에...티벳은...인도와 중국 양쪽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와 혼재되어있었습니다...
서로 자기주장을 하였기에...어느게 진실인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불교가 첨예하게 대립되어있는 이 상황에서..
띠송데짼은 싼타락시따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혼란이 왔을 때...인도에서 까말라실라를 부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선을 대표하는 마하연과...인도불교를 대표하는 까말라실라가..
양쪽의 운명을 걸고... 쌈예사원에서 한판을 벌였습니다...
까말라실라의 승리로... 티벳은 인도불교를 정착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애초부터 의중은 이미 여기에 있었지만..대중의 지지를 얻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결과 티벳은..인도불교에서처럼..교학을 공성의 지견을 세우는 도구로 썼습니다..
인도 대승불교의 수행차제로써...내속승의 아래쪽을 지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마하연은 승복하지 않고 까말라실라를 암살하였으니...
그것이 중국선불교와 한국선불교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불립문자를 주장하여... 교학을 버렸습니다..
지혜를 주장하여... 방편을버렸습니다..
비끄라마실라 대학에서 승원장의 신분으로 온 사람..
불교에 관한것이라면 모르는것이 없는 인도의 대학승 아띠샤에게...
빠드마삼바바의 수많은 가르침은..생전 듣도보도 못한것으로 가득했습니다...
Tantra에도 문외한이 아닌 아띠샤였지만...
``어머나 이런것도 있었어~~`` 하고 까무러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빠드마삼바바가 티벳에 들고온것은...
마하요가.. 아누요가.. 아띠요가라하는 내속승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아띠샤가 들고온것은... 인도 대승불교였습니다...
둘은 태생의 본질이 달랐지만...
서로 다른 이 두 세계는 화학적으로 합성을 합니다...
인도에서 건너온 대승의 철학은 지지하는 기반을 이루고...
내속승의 세가지 가르침은 그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같았습니다..
티벳불교는 역사에서 몇번 상황종료될 뻔 하였습니다...
티벳은 도움을 요청했고...
인도에서 온 탁월한 지원군이 그 위기를 타개합니다..
까말라실라.. 아띠샤 같은 분이 그런 분입니다...
까말라실라와 아띠샤의 영향으로...
수습차제..보리도등론과 같은..다르마의 차제에 관한 논서들이 나타났으며...
이어서...해탈보장..보리도차제론과 같은 것이 나타나도록.. 부추켰습니다...
그 결과.. 인도불교의 수행차제는 내속승의 선행적인 과정으로 자리잡습니다..
그것이... 티벳불교의 공가행과 불공가행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핵심은...
아무리 견해와 방편이 뛰어난 최상승의 가르침이라하더라도...
그 아래를 지지해주는 어떤 기초없다면...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건물처럼 위태롭다는 것입니다...
내가 딛고있는 대지의 중요성처럼...
내속승의 커다란 성을 지지해준 대승의 철학은...
인도불교가 티벳불교에 미친 가장 큰 영향입니다..
정리합니다..
두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인도불교는 대승의 두 철학으로 대표되고..
티벳불교는 인도불교의 두 철학과 우겐국의 내속승이 결합된 것입니다...
인도의 대승철학은...
내속승과 상호작용하면서... 미세한 변화를 일으켰으며...
미세한 변화의 차이만큼.. 티벳의 전승속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내속승의 수승한 방편으로 건너가기 위한 디딤돌로..
대승의 핵심을 녹여...공가행, 불공가행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타공설과 자공설의 분별..
미륵오론 중에서 법법성분별과 구경일승보성론의 강조..
공가행과 불공가행으로의 변형...
이것이 대승의 변형입니다...
그러나 대승의 핵심을 이해하는것은.. 전승마다 조금씩 달랐으니..
자공설과 타공설의 선택으로 갈라지고..
공가행,불공가행에 대한 적용이 조금씩 갈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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